5성급 호텔서 7유로 생수만 제공해
伊 법원 "수돗물 제공 의무 규정 없어"
EU는 식당 수돗물 제공 '장려' 수준

이탈리아 대법원이 5성급 호텔의 수돗물 제공 거부는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로마 출신 여성은 돌로미티 코르바라의 호텔 사송게르에서 수돗물 대신 7유로짜리 생수만 제공했다며 2700유로 배상을 청구했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이탈리아 현행법상 호텔·식당이 손님에게 수돗물을 제공할 의무는 없으며, 제공 여부는 업소 재량이라고 판단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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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CNN과 BBC 등 외신은 이탈리아 대법원 격인 파기원이 최근 돌로미티 산악지대 코르바라의 5성급 호텔 '사송게르'가 투숙객에게 수돗물을 제공하지 않은 행위에 법적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고 보도했다. 파기원은 이탈리아 법과 관련 규정상 호텔이나 식당이 고객에게 수돗물을 반드시 제공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지난 2019년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 기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출신으로 알려진 한 여성은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돌로미티 지역의 스키 휴양지 코르바라에 있는 호텔 사송게르에 일주일간 머물렀다. 그는 저녁 식사가 포함된 상품을 이용했지만, 음료는 숙박 요금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여성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마다 수돗물을 요청했고, 일부 보도에 따르면 비용을 내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호텔 측은 수돗물 대신 750㎖짜리 생수만 제공했다. 해당 생수 가격은 병당 7유로, 우리 돈 약 1만1000~1만2000원 수준이었다.

"공짜 물은 권리" vs "법적 의무 없다"

여성은 귀가 후 호텔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는 수돗물이 레스토랑과 호텔 서비스의 핵심 요소라며 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소비자 권리 침해라고 주장했다. 또 수돗물 제공은 "침대에 시트가 깔려 있고 욕실에 비누가 놓여 있는 것"처럼 기본적인 서비스에 해당한다고 봤다.

특히 그는 "물은 천연자원이자 보편적 인권"이라며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양은 무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수돗물 제공 거부로 경제적 손해와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며 2700유로(약 470만원)의 배상을 청구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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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단은 달랐다. 로마 법원과 항소심 법원이 잇따라 여성의 청구를 기각했고, 파기원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탈리아 현행법상 술집·식당·호텔 등 영업장이 고객 요청에 따라 수돗물을 제공해야 한다는 명시적 의무가 없다고 봤다. 따라서 수돗물을 제공할지 여부는 각 업소의 재량이라는 취지다.


호텔 측 변호인 실비오 벨라르디는 현지 매체 코리에레 알토아디제와의 인터뷰에서 법원이 "수돗물을 공급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BBC에도 "이 사건은 하급심과 항소심을 거쳐 파기원에서도 호텔 측 승소로 끝났다"고 밝혔다. 호텔 측은 고급 레스토랑 상당수가 그러하듯 식탁에서는 밀봉된 생수만 제공하는 것이 내부 방침이었다고 주장했다.

벨라르디 변호인은 또 "해당 여성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호텔 안에서 물을 마실 수 없었던 것은 아니며, 다만 레스토랑 식탁에서 수돗물을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취지로도 반박했다. 이번 판결은 유럽 각국의 외식 문화와 법 제도 차이를 다시 부각했다.

식당에서 생수 주문하는 문화 일반적인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는 식당에서 생수를 주문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며, 무료 수돗물을 요구하는 것이 낯설거나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반면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주류 판매 허가를 받은 업소가 고객 요청 시 무료 식수를 제공해야 한다. 프랑스와 스페인 역시 식당의 수돗물 제공 의무가 상대적으로 명확한 편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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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차원의 규정도 있다. 다만 EU 식수 지침은 음식점 등이 수돗물을 제공하도록 장려하는 수준이지, 모든 회원국 업소에 무료 수돗물 제공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규정은 아니다. 이에 따라 식당 수돗물 제공 여부는 국가별 법과 관행에 따라 달라진다. 외신들은 이번 판결이 단순한 '물 한 잔' 논쟁을 넘어 소비자 권리, 식당 관행, 친환경 소비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전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유럽 내 일부 식당은 정수한 수돗물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생수 판매가 외식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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