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손끝에 벽이 닿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 열릴 때마다 삐거덕 소리를 내는 나무 대문이 서로 마주 보며 나란히 이어진다. 서너 가구가 대문 하나를 공유하는 공간. 주인집도, 셋집도 방 한두 칸에 네 식구, 다섯 식구가 모여 사는 보금자리다.
음침한 전구가 위태롭게 천장에 매달려 있는 화장실은 공동의 공간이다. 마당 한구석에 놓여 있는 수도 하나에 의지해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한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는 얘기는 빈말이 아니다. 누구네 아이가 선생님에게 야단맞고 왔는지도 알 정도로 그곳엔 비밀이 없다. 어느 집에서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이면 냄새가 옆방으로 넘어가 군침을 자아낸다. 김치부침개라도 하나 부치면 나눠 먹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계.
옆집 아이가 놀다가 무릎을 까진 채 돌아온 걸 보면 자기 자식이 아니더라도 비상약품 상자의 일명 빨간약(포비돈 요오드)을 상처 부위에 호호 불어가며 발라주곤 했다. 이웃 사이에 가끔은 사소한 일로 토라지고, 다투기도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 주고받으면 금세 훈훈한 관계로 바뀐다. 삶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터득하던 1970년대 서울 어느 동네의 얘기다.
그 시절 골목은 사회생활을 예행 연습하는 기회의 장이었다. 나무 평상 위에 헌 장판을 이리저리 덧대서 만든 공간에는 매일 장기와 바둑의 열기로 뜨거웠다. 시원한 수박에 뜨끈한 익힌 감자가 준비될 때면 훈수꾼과 구경꾼까지 섞여서 작은 잔치판이 벌어졌다.
반백 년 세월이 흐르고, 골목길의 추억이 사라진 자리엔 육중한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시절 좁은 골목길 넓이밖에 안 되는 아파트 현관 사이는 적막만 가득하다. 무엇을 하는 이가 사는지, 요즘 어찌 지내는지 알기도 어렵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생활이 보장되는 만큼 이웃의 정은 찾기 어렵다. 오가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고개를 돌린 채 스마트폰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 그 흔한 목례도 어색하게 여긴다. 굳게 닫힌 현관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층층이 막힌 콘크리트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사회생활을 예행 연습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온기를 품은 이웃보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너머의 상대가 더 익숙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자극적인 언어의 홍수 속에서 배려와 존중의 가치는 설 자리를 잃는다. 세상과 타인을 향한 적대감 표출로 쾌감을 충전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살벌한 말을 퍼부어도 익명성의 뒤에 숨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혐오와 조롱이 놀이가 된 세상, 그 슬픈 메아리는 지금도 공동체의 터전을 훼손한다.
어느 전직 대통령 묘역까지 찾아가 혐오를 상징하는 사진을 찍고 낄낄대는 이들과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세상을 저주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잠깐의 웃음 뒤에, 길게 이어질 공허함만 뒤따르지 않겠는가. 통각(痛覺)이 무뎌진 사회를 대물림하는 어리석은 몸부림이 안타까울 뿐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들고 있던 사람들 대박 났네…566% 올랐는데 더 ...
가끔은 아픔이 전염되는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타인의 아픔도 나의 그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세상, 김치부침개 한 입을 나눠 먹어도 웃음꽃을 피웠던 그 시절. 온기를 품었던 통각이 살아 숨 쉬는 세상을 우리는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