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값은 천차만별이다. 몇 년 전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 공모전에서 선정된 한 문장에는 100만원이 시상됐다. 그런 이벤트에 당선된 글이 아니라면 원고료는 200자 1매 단위로 산정된다. 국내 필자 중 한 문장에 평균 5000원을 넘는 비율은 절반이 안 될 듯하다.

값이 높든 낮든, 타인이 두뇌는 물론 몸을 쥐어짜서 써낸 글은 형식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여기서 실질적인 존중이란 저작권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을 지나치게 보호하면 문화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를 고려해 저작권법은 타인의 저작물을 일정한 범위에서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허용한다. '자유롭게'는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고 이용에 따른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관련된 조항이 다음과 같은 제28조다.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해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이 조항 중 '정당한 범위'는 대통령령에도 명시되지 않았다. 대법원 판례도 '정성적'이다. 대법원 판례는 "그 표현형식상 피인용 저작물이 (중략) 인용저작물에 대해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에 있다고 인정돼야 할 것이다"고만 했다. 인용한 글보다 직접 쓴 글이 주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도대체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가 어느 정도일까? 50대 50(인용 반·새로 쓴 글 반인지)인가? 이를 두고 저자와 출판사 사람들은 머리를 싸매왔다. 이와 관련해 내가 오래전에 들은 기준 또는 관행은 '한 문단 분량을 인용할 때는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였다. 이후 직간접으로 접한 기준은 훨씬 짧았다. 어떤 저자이자 출판사 대표는 한 문장, 심지어 한 문구를 자신의 글에 인용할 때도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았다.

인용은 글의 표현을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저자의 생각과 경험을 기존 저작권자의 그것과 연결하며 확장하고 깊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런 인용이 까다로운 기준 또는 관행 때문에 번거로워졌다. 책을 통한 사고의 교류에 걸린 저항이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답답해한 한 출판사 대표는 "더 자유롭게 인용해도 된다"며 "그렇게 해서 우리 출판사에서 낸 책에 대해 저작권 침해 소송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내게 말했다. 그 경우 대법원까지 가서 새로운 판례가 나오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마침내 '정량적'인 제안이 나왔다. 정지우 변호사는 "인용 대상의 저작물이 어문저작물이라면, 적어도 발췌해 인용한 부분의 세 배 이상의 분량이 '나의 언어'로 쓴 해설, 비평, 연구, 리뷰 등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3월에 발간된 책 '출판인을 위한 저작권법'에서다. 다만 이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분량 외에 추가로 고려해야 할 측면은 이 책에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이 방안이 국내 출판계를 묶어온 인용의 제약을 완화해주리라고 기대한다.


인용이 중요함을 이 글도 보여준다. 정 변호사의 제안은 이 글에서처럼 적절한 인용을 통해 더 온전히 전해진다. 물론 이 글은 그의 기준 중 정량적인 부분을 충족한다. 그가 쓴 문장은 이 글 전체 분량의 4분의 1 이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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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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