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한번에 7만석…5만석 없는 韓, 축구장 빌려 공연[공연돔 없는 K팝 종주국]
①한국 대중음악 티켓 매출 54%
1만석 이상 초대형 무대서 발생
월드투어 수요 감당할 인프라 없어
"수익·관광 소비 유출 막을 거점 필요"
K팝은 해외에서 5만~7만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채우지만, 정작 종주국인 한국에는 이를 수용할 5만석급 공연돔이 없다. 그 결과 국내 가수들은 축구장과 1만5000석 규모 체육관을 전전하는 실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5만석 전후의 대규모 공연장이 필요하다"며 현재 추진 중인 2만~3만석 공연장에 대해 "규모가 작다. 국가 상징 공연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다.
이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방선거 이후 새 지방정부와 협의해 공연장 입지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연 업계에서는 5만석급 공연돔 신설과 지역 문화 균형 발전 차원의 2만~3만석 아레나 확충은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2만~3만석 규모 음악 전문 공연장은 필요하다. 지역 공연 시장 기반을 다지고, 중대형 아이돌 투어나 해외 팝스타 내한 공연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언급한 시설은 그보다 상위 개념인 5만석 안팎의 국가급 공연돔이다. 2만석 아레나가 공연 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허리'라면, 5만석 돔은 글로벌 최정상급 아티스트를 유치하는 '천장'이다. 두 시설은 역할과 목적이 다르다.
일본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아뮤즈 관계자는 "2만석 안팎의 아레나와 5만석 안팎의 돔·스타디움은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어 서로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레나는 주요 도시에 흩어져 있어 아티스트가 전국을 돌며 팬을 만나는 투어 공연장으로 자주 쓰이고, 돔·스타디움은 투어 마지막 날이나 기념일처럼 전국의 팬이 모이는 축제의 장소로 쓰인다"고 했다.
문체부 역시 대형 공연장 부족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업무보고에서 5만석 규모 돔구장 신설과 서울·고양 아레나 확충 방안을 함께 제시했고, 단기 대책으로 지방 체육시설의 음향·조명 보강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K팝 최상급 공연이 겪는 병목은 단순히 스피커와 조명을 추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5만명의 관객을 수용·통제할 동선, 날씨와 소음을 차단할 지붕, 대형 무대 장비 반입 시스템, 백스테이지 구조, 심야 귀가를 지원할 광역 교통망까지 종합적인 산업 인프라가 필요하다. 5만석 공연돔 건립은 단순한 문화시설 확충이 아니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자본을 한국으로 끌어올 수 있는 경쟁력의 문제다.
대중음악 매출 절반, 1만석 이상 공연장서 발생
1일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2025년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따르면 지난해 대중음악 공연은 4677건, 7749회 열렸다. 예매 티켓은 764만2999매, 티켓판매액은 9817억2286만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공연 건수는 17%, 회차는 17.6%, 티켓 예매수는 19.9%, 판매액은 29% 증가했다.
특히 대형 공연장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두드러졌다. 2025년 1만석 이상 공연장에서 열린 대중음악 공연은 티켓 예매수 357만5433매, 판매액 5300억8731만원을 기록했다. 전체 대중음악 티켓 예매수의 46.8%, 판매액의 54%에 해당한다. 대중음악 시장 자본의 절반 이상이 대형 공연장에서 발생한 셈이다.
성장 속도도 가파르다. 1만석 이상 공연은 2021년 14건(44회)에서 2025년 157건(359회)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티켓판매액은 194억원에서 5301억원으로 약 27배 확대됐다. 공연 건수 자체는 소수지만, 시장 규모 측면에서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이 중소형 공연장에서 스타디움급 공연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난해 7월 대중음악 티켓판매액은 1101억원, 12월은 1304억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름 대형 야외 공연과 연말 콘서트 수요가 집중된 영향이다. 대형 공연은 이제 특정 팬덤 중심 이벤트를 넘어 한국 대중음악 산업 전체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됐다.
해외 5만석 무대 채우는 K팝 가수들
K팝 가수들의 동원력은 해외 시장에서 이미 입증됐다. 방탄소년단(BTS)은 2019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이틀간 12만명을 모았다. 202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 4회 공연에서는 21만4000장의 티켓을 판매하며 약 3330만달러(약 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북미 투어에서는 5개 도시 15회 공연으로 약 84만명을 동원했다.
블랙핑크는 2019년 도쿄돔(5만5000명)에 이어 2023년에는 6만명 수용 규모의 유럽 최고 경기장인 프랑스 스타드 드 프랑스 무대를 밟았다. 트와이스는 2024년 해외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7만명 수용이 가능한 일본 최대 규모 닛산스타디움에서 이틀간 14만명을 동원했다.
이제 해외 돔·스타디움 투어는 K팝의 일상이 됐다. 세븐틴은 일본 닛산스타디움 2회 공연으로 14만4000명을 동원했으며, 일본 돔 투어(나고야,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9회 공연을 통해 43만5000명을 모았다. 스트레이 키즈는 도쿄돔과 교세라돔 6회 공연으로 31만5000명, 이듬해 일본 스타디움 4회 공연으로 22만명을 끌어모았다.
5만석급 공연장은 최정상급 가수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에스파(도쿄돔 9만4000명), 지드래곤(도쿄돔 8만명), NCT(일본 스타디움 22만명), 엔하이픈(일본 4개 도시 40만명) 등 중상위권 아티스트들도 월드투어 과정에서 5만석 이상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내 수요 역시 이미 검증됐다. 아이유와 임영웅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각각 이틀간 10만명 규모의 단독 콘서트를 매진시켰다. 아이돌 그룹뿐만 아니라 솔로 가수와 트로트 가수까지 하루 5만명 동원력이 가능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국내 대형 공연은 여전히 음악 전용 돔이 아닌 체육시설 대관에 의존하고 있다.
해외서 번 K팝 자본, 국내 생태계로 연결해야
5만석 공연돔은 단순한 상징 시설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커진 K팝 자본을 국내로 흡수할 기반이다. 한국 가수들이 도쿄돔과 웸블리를 채우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동안, 국내 기획사들은 여전히 체육관 대관 경쟁과 축구장 잔디 훼손 논란 속에서 임시 무대를 세우고 있다.
공연장 인프라 논의의 핵심은 단순한 좌석 수가 아니라 어떤 시장의 자본을 국내로 끌어올 것인가에 있다. 2만석급 아레나가 중대형 공연의 빈도를 높여 산업 생태계를 두텁게 만든다면, 5만석 공연돔은 월드투어 최정점의 메가 이벤트를 한국에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K팝이 해외 스타디움을 매진시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를 소화할 국내 무대가 없다면 공연 수익과 관광 소비, 무대 제작 기술력 등 부가가치는 해외에 축적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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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세계적 성공을 거둔 콘텐츠라도 장기 수익 구조가 해외 플랫폼에 의존하면 국내 산업 생태계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K팝 역시 초대형 글로벌 공연을 한국 안에서 직접 기획·운영하며 발생하는 저작권과 지식재산권(IP) 수익, 제작 역량이 국내에 축적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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