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의 쇼크웨이브]'춤추는 로봇 넘는다'…휴머노이드 국가대표 경쟁
'K문-샷' 프로젝트…학연 ‘원팀’으로 휴머노이드 승부수
기계연·KIST 중심 K휴머노이드 개발 '본격화'
인공지능(AI)이 육체를 입은 '피지컬 AI', 즉 휴머노이드 로봇이 전 세계 기술 패권의 격전지로 부상했다. 미국 테슬라의 '옵티머스'와 중국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 역시 거센 추격전에 나섰다. 춤을 추고, 축구를 하고, 마라톤을 하는 로봇의 모습에 주눅이 들 법도 하지만 우리 연구진들은 정부의 지원하에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로봇 몸체와 AI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한 'K-문샷'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기계연구원(기계연) 주관 '자율성장 AI 휴머노이드 전략연구단'에 이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주관 민관협력 사업이 본격화하며 K휴머노이드 개발도 잰걸음을 시작했다.
과학계에서는 두 거점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한 경쟁과 협력이 이뤄지며 K휴머노이드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대도 형성되고 있다.
◆KIST·LG 연합군, '대뇌-소뇌' 구조의 초거대 AI로 무장= 지난 18일 서울 홍릉 KIST에서는 KIST, LG전자, LG AI연구원, LG에너지솔루션, 카이스트(KAIST), 서울대, 고려대, 위로봇 등 국내 로봇 관련 산학연 관계자들이 모여 휴머노이드 '국가대표팀'을 구성했다. 이날 열린 '민관협력 기반 AI 휴머노이드 원천기술 고도화 킥오프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은 각자의 포부를 밝히며 한국 휴머노이드 산업을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KIST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케이펙스(KAPEX)'가 뼈대이고, LG가 개발한 AI가 '영혼'을 담당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국가대표급 공공연구기관인 출연연과 국내 AI의 대표 기업이 힘을 합쳐 K 휴머노이드를 주도한다는 그림이다. KIST와 LG AI연구원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협력하며 케이펙스를 개발해 왔다. 이종원 KIST 휴머노이드 단장은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급선무였다"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독자 플랫폼 구축 의지를 밝혔다.
정부와 민간 예산 약 500억원이 투입되는 KIST 연합의 핵심 기술은 '체화 지능(Embodied AI)'이다. 단순히 동작을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시각, 촉각, 언어, 행동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생성형 VHLA(Visuo-Haptic-Language-Action) 모델'을 개발한다. 양성욱 KIST 책임연구원은 "실제 생활에서 스스로 학습·경험해 나아가는 모델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이수 KIST 연구원도 "기존의 로봇들이 센싱 없이 정해진 궤적만 따라갔다면, 이제는 환경 인식 기반의 학습 기술을 통해 복잡한 실생활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집안 정리해"라는 모호한 명령에 로봇은 어떻게 대응할까. 이 의문을 푸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다. 명확하지 않은 지시를 받은 로봇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세부 작업 계획을 수립하는 '범용 물리 지능'이 필요한 이유다. 이이수 연구원은 "결국 사람이 사는 복잡한 환경에서 로봇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느냐가 기술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KIST 측은 케이펙스가 움직이는 모습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케이펙스가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며 곧 성과를 보여드리겠다고 부연했다.
◆"우리의 기술은 국민의 세금, 모두의 삶을 위해 쓰여야"= 이번 사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목 중 하나는 국내 대표 기업인 LG그룹의 전폭적인 참여와 그들이 보여준 '국가적 책임감'이다. LG AI연구원 측은 이날 발표를 통해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이시행 LG AI연구원 리더는 "우리가 보유한 초거대 AI '엑사원(EXAONE)' 기술과 휴머노이드 브레인 기술이 온전히 LG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모델들은 국가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산인 만큼, LG 그룹의 이익을 넘어 우리 모든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모델로 개발돼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LG AI연구원이 정부의 독자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을 통해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엑사원을 한국을 위한 공용 AI로 육성해 휴머노이드 성공에 기여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기업의 영리 목적을 넘어,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의 최첨단 기술을 공공의 영역으로 환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도 해석된다. 배터리 업체 LG에너지솔루션도 힘을 보탠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세계 최초로 로봇에 적용해, 화재 위험을 낮추고 장시간 구동이 가능한 안전성까지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 등의 연구진도 학계 차원에서 원팀으로 힘을 보태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로봇 전문가인 오상록 KIST 원장은 자존심을 걸었다. 그는 이번 민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제는 단순히 재주를 부리는 로봇 수준을 넘어, 실제 물리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이 필요한 시대"라고 역설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테크스페셜리스트가 2025년 11월, KIST의 휴머노이드 로봇 케이펙스와 악수를 하는 모습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당시 케이펙스는 스스로 악수를 하지는 못했다.
원본보기 아이콘◆기계연 '카이로스', 풀스택 하드웨어와 데이터 팩토리로 승부= KIST 연합군이 미래를 제시했다면 선발 주자인 기계연 중심의 '자율성장 AI 휴머노이드 글로벌 톱 전략 연구단'은 현재형이다. 기계연은 지난 4월 연구소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깜짝 손님을 공개했다. 휴머노이드 '카이로스(KAIROS)'다.
1000억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자율성장 AI 휴머노이드 글로벌 톱 전략 연구단은 지난해 기계연, ETRI, 생기연 등 출연연과 카이스트, UCLA 등이 힘을 합쳐 지난해 10월 출범했다. 이후 6개월여 만에 키 170㎝, 무게 80㎏의 건장한 로봇을 선보였다. 카이로스는 무대로 걸어 나와 참석자들과 악수하며 K 휴머노이드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렸다.
미국·중국에 뒤진 현실 속에서도 기계연 연구진은 각고의 노력 끝에 걷고 악수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를 만들어 냈다. 기계연 측은 밤낮으로 연구를 거듭하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움직이는 로봇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카이로스는 인간의 의사결정 체계를 모사한 '대뇌(고수준 사고)-소뇌(실시간 운동 제어)' 분리 구조의 브레인을 통해 구현하게 된다.
카이로스는 자동차 검사 공정에서 직접 차량에 탑승하는 '휴머노이드 엔지니어'는 물론, 세탁·정리정돈을 돕는 '휴머노이드 하우스키퍼'라는 두 가지 실증 모델을 통해 산업과 가사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기술력을 증명하는 목표도 제시하고 있다.
박찬훈 글로벌 톱 전략 연구단장은 "국산 공통 연구 플랫폼이 없어 제약을 겪던 서러움을 끝내겠다"며, 2027년 상반기까지 카이로스를 버전 1.0으로 고도화해 국내 20여개 협력 연구기관에 전격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계연은 또한 1000㎡ 규모의 '개방형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해 향후 100대 이상의 로봇을 동시에 운영하며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확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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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연구 조직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약 1350억원. 상당한 규모의 지원이지만 K 휴머노이드 시대를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재원이 부족하다. 박 단장은 "개방형 데이터 팩토리에서 데이터 수집을 위한 로봇을 투입하는 데도 엄청난 비용이 소모된다"고 말했다. AI 개발에 지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K휴머노이드 개발에도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장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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