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충격 밥상까지 번지나…2년만에 물가 3%대 돌파 촉각
중동 전쟁 장기화로 인한 고유가와 고환율의 복합 충격으로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 충격이 서비스와 가공식품 가격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는 데다, 지난해 농산물 가격 하락에 따른 기저효과와 식품 원재료 가격 상승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한층 고조되는 양상이다.
생산자물가 폭등…공급망發 인플레이션 본격화
3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농축수산물 가격은 1년 전보다 9.7% 상승했다. 특히 계란이 57.0% 급등해 2017년 7월(64.8%) 이후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원본보기 아이콘28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등 물가 당국은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후반에서 3%대 초반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기름값 상승이 식품과 서비스 가격까지 번지고 있어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물가가 오르기 전 단계인 생산자물가는 이미 크게 뛰었다. 생산자물가는 공장이나 기업이 물건을 만들 때 드는 비용을 뜻한다. 생산 비용이 오르면 시간이 지나 소비자가 사는 물건 가격도 함께 오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생산자물가는 전달보다 2.5% 상승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월 이후 약 28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도 6.9% 올라 3년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석탄·석유제품 가격은 한 달 만에 31.9% 급등했는데,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국내 생산 비용도 함께 뛰어오른 탓이다. 이런 생산 단계의 가격 상승은 시간이 지나면 소비자물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면 가공식품, 외식,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4월 국내공급물가는 전달보다 5.2% 올랐고, 이 가운데 원재료 가격은 28.5% 급등했다.
유가·농·축·수산물 '기저효과'의 부메랑
문제는 지금까지 물가 상승을 막아주던 농·축·수산물 가격 흐름마저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4월 농·축·수산물 가격은 공급 증가 영향으로 전년 대비 0.5% 하락하며 전체 물가 상승을 일부 상쇄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농산물 가격이 크게 떨어졌던 만큼 올해는 같은 가격 수준이어도 상승률이 높게 계산되는 '기저효과'가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국제 식품 원재료 가격 상승 흐름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30.7포인트로 전월 대비 1.6% 상승했다. 특히 유지류 가격지수가 193.9포인트로 5.9% 급등했는데, 2022년 7월 이후 최고치다. 팜유·대두유·해바라기유 등 가격이 동시에 오른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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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식용유 가격 상승은 단순 유지류 가격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라면·과자·빵·치킨 등 가공식품 원가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류·포장 비용까지 오르면서 먹거리 물가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내부에서도 국제 원재료 가격 상승분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는 시차 효과가 이달부터 본격화할 가능성을 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5월 물가는 석유류 가격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농·축·수산물 가격의 기저효과가 더해져 오름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6.4.30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러시아 강세에 원재료 부담 확대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면서 물가를 자극하는 것도 불안 요소다. 환율 상승은 한국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특히 부담이 크다. 한국은 원유와 곡물, 사료, 각종 원자재 상당수를 해외에서 들여온다. 이때 대부분 달러로 결제한다. 예를 들어 똑같이 100달러짜리 원유를 사더라도 환율이 1400원이면 14만원이 들지만 환율이 1500원이 되면 15만원이 필요하다. 원유 가격 자체가 오르지 않아도 환율만으로 비용 부담이 커지는 셈이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1450원 안팎에서 움직였지만 중순 이후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서 지난 22일에는 장중 1517.2원까지 올랐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유 가격 상승 부담에 환율 상승 부담까지 한꺼번에 떠안게 된다. 결국 원가 부담은 석유화학과 물류, 식품업계로 번지고, 시간이 지나면 휘발유·가공식품·외식 가격 등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최근에는 환율 상승 흐름에 투자 목적의 단기 외환 거래까지 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달러 가치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미리 달러를 사두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물가 당국은 물가 상승 위기감에 대응 강화에 나섰다. 재경부는 최근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을 확대하고, 정부 비축 수산물 방출, 축산물 수입 확대 방안을 잇달아 내놓았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으로 단기적인 가격 상승 압력은 일부 완화되고 있지만 국제유가 상승 영향이 시차를 두고 본격 반영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에 근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 지수는 118.80(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2.2%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축산물 물가는 작년 동기 대비 6.2% 상승, 외식 물가도 3%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대부분의 농산물 품목은 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5.6% 하락했다. 이날 서울 시내의 한 마트에 돼지고기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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