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이벤트 아닌 축적
소비까지 이념화해서는 안 돼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고개를 숙였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가 5·18민주화운동 비하 논란으로 확산한 지 8일 만에 공개 사과다.
1999년 이화여대 앞 1호점으로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브랜드라기보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누군가에게 스타벅스는 작업실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소비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신세계가 그동안 판매한 것도 이 같은 감각을 앞세운 이미지였다. 신세계그룹은 오랫동안 세련된 라이프스타일과 프리미엄 브랜딩을 자산으로 쌓아온 기업인 만큼, 이번 논란은 매출 감소보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 훼손이라는 점에서 더 타격이 크다.
이 때문에 이번 스타벅스 사태는 마케팅 실패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소비자들이 실망한 지점은 '탱크데이'라는 마케팅 작명이 아니라 그 이름이 네 단계 결재라인을 거치는 동안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승인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신세계는 정 회장의 기자회견에서 기업의사회적책임(CSR)과 법무팀의 검토가 배제됐고, 매출 중심 마케팅을 관행적으로 승인했다고 인정했다. 개인의 일탈보다는 '시스템 실패'라는 점을 그룹 차원에서 인정한 것이다.
2019년 스타벅스와 마찬가지로 역사 인식 논란에 휘말렸던 무신사는 공개 사과 이후 조만호 대표가 직접 박종철기념사업회를 찾았다. 그리고 그 만남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7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 번의 사과문보다 이후 몇 년간 이어진 행동이 사과의 진정성을 만든 셈이다.
사과의 진정성은 시간의 축적으로 증명된다. 신세계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역사 인식 교육과 내부 검증 시스템 강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스타벅스에 지갑을 닫았던 소비자들이 보게 될 것은 기자회견장의 사과문보다, 시간이 지난 뒤 신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일 것이다. 사과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축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과 소비자의 선택까지 진영논리로 몰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떤 소비자는 등을 돌릴 수 있고, 어떤 소비자는 스타벅스를 계속 이용할 수도 있다. 그 선택마저 정치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소비는 더 이상 개인의 취향과 자유가 아니라 이념을 검증하는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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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진정성은 하루짜리 기자회견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과의 품격은 '그 이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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