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주도 원전 해체 표준안, 국제표준화기구 승인
원전 해체 시장 크는데 국내 인력 경험 부족 뚜렷
장비·처분 생태계 구축 시급

[Why&Next]국제표준 선점 나선 K원전…현장은 여전히 인력·인프라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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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원전 해체 국제표준 제정에 속도를 내며 글로벌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국내 원전 해체 산업은 전문인력과 폐기물 처리, 장비 공급망 등 핵심 생태계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실제 해체 경험과 산업 기반을 갖춘 국가는 제한적이어서 "지금 누가 먼저 레퍼런스를 확보하느냐가 향후 시장 주도권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26일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한국이 2023년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세계 최초로 제안한 원전 해체 표준안이 최근 신규작업표준안(NP)으로 최종 승인됐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을 포함한 9개 회원국의 찬성을 얻어 약 3년간의 논의를 통과했다. 신규작업표준안은 국제표준 제정의 첫 단계다. 앞으로 작업반 초안(WD), 위원회안(CD), 국제표준안(DIS), 최종 국제표준안(FDIS) 절차를 거쳐 2027년 말 국제표준(IS) 제정을 목표로 한다. 한국은 이번 표준안의 프로젝트 리더를 맡아 사실상 국제 논의를 주도하게 된다.

정부가 국제표준 선점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시장 성장 속도 때문이다.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KNA)가 발간한 '글로벌 원전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영구정지 원전은 204기에 달하지만 실제 해체 완료 원전은 21기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2050년까지 약 200기의 원전이 해체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며 "2021~2050년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 규모는 1250억~1350억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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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는 시장 전망치를 더 높게 본다. 그로쓰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전 세계 약 400기의 상용 원전이 해체될 예정이며 전체 시장 규모는 1000조원 이상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시장도 본격 개화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해 고리1호기 해체가 공식 승인되면서 국내 원전 산업은 기존 '건설·운영' 중심에서 '해체'까지 포함하는 전 주기 산업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을 맞았다. 특히 한국은 2030년까지 12기의 원전이 순차적으로 설계수명을 맞게 된다. 한국원자력국제협력재단(KONICOF)은 국내 원전 해체 시장 규모를 총 24조4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계속운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2029년까지 약 9조원 규모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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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시장 전망과 실제 산업 역량 사이 간극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전 해체는 단순 철거 작업이 아니라 방사선 제염, 대형 구조물 절단, 폐기물 분류·처리, 부지 복원 등을 포함하는 고난도 기술 산업이다.


가장 큰 문제로는 전문인력 부족이 꼽힌다. 세계원자력산업현황보고서(WNISR) 계열 분석 등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등은 원전 운영·정비 인력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신규 인력 유입은 제한적이다. 업계는 2025~2029년 원자력 인력 수요가 3556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지만, 원자력 전공 재학생 수는 2017년 2777명에서 지난해 2071명으로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원자력 전공 졸업생 568명 가운데 실제 원자력 기업·연구소 등 산업계로 유입된 인력은 110명에 그쳤다.


문주현 단국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우리가 아직 실제 상업용 원전 해체를 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결국 가장 부족한 건 해체 경험을 가진 인력"이라며 "일반 건물 철거와 달리 원전 해체는 방사선 물질을 관리하면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력 고령화 문제는 단순히 사람이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원전 운영 노하우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며 "원전은 수십 년 동안 설비와 절차가 계속 바뀌는데 그 변화 과정을 아는 기술자들이 은퇴하면 기술 전수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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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시 이를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 산업부는 '원전해체 산업 육성전략'에서 기존 원전 인력 1300여명을 해체 분야로 전환하고, 해체 특성화 대학원과 현장실습형 교육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현재 인력만으로는 향후 해체 수요 대응이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폐기물 처리 문제 역시 리스크다. 고리1호기 해체 과정에서는 약 17만t의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할 예정이며, 이 중 9000t 이상은 중·저준위 폐기물로 분류된다. 처분 예산만 2625억원이 별도로 책정됐다. 업계에서는 향후 해체 대상 원전이 늘어날수록 폐기물 저장·운송·처분 인프라 부족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관련 장비와 공급망 생태계는 아직 초기 단계다. 업계는 원격 절단 로봇, 방사선 제염 장비, 비파괴검사(NDT), 디지털트윈(DT) 기반 안전진단 등을 핵심 기술군으로 꼽는다. 특히 NDT는 해체 산업의 20~30%를 차지한다. 다만 국내 산업은 아직 실증 중심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한국원자력국제협력재단(KONICOF)은 한국이 월성1호기 중수로 해체 실증을 통해 세계 최초의 상용 중수로 해체 경험을 축적하고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수출산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기술·인력·공급망 기반 확대가 필요한 전환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결국 초기 레퍼런스를 확보한 국가와 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국제표준 선점도 중요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해체 경험과 전문인력, 폐기물 처리 역량을 갖춘 국가가 결국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기술보다 산업 생태계를 얼마나 빨리 구축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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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교수도 "지금은 경험이 부족한 게 약점이지만 고리1호기 해체 경험을 잘 축적하면 이후 해체 사업에서는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가 원전 운영 기술 자체는 세계 상위권인 만큼 해체 경험만 축적된다면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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