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데 잠 좀 자자"…시민들 괴롭히는 '선거 공해'
주말 유세 현장 돌아보니 트럭 뛰어넘는 소음
유권자들 "보여주기식 유세 보면 반감만 커져"
문자 폭탄 모자라 교통섬 장악 법규 위반까지
"찐 찐 찐 찐 찐이야~ 진짜가 나타났다. 성원해주십시오!"
주말을 맞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4번 출구 앞. 특정 후보의 이름을 무한 반복하는 트로트풍 선거 로고송이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바로 옆 벤치에 앉은 시민들은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큰 노랫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전화를 하던 한 행인은 목소리를 높이다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서대문구 홍제역 앞 상황도 비슷했다. 선거 차량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의 소음도는 90㏈(데시벨). 소음이 심한 공장 내부나 트럭 운행 수준의 소음이다. 지나가던 차량이 항의성 경적을 길게 울리기도 했다.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는 선거 유세와 인권영화제 행사 동선이 겹치기도 했다. 후보 캠프 측이 클라리넷 찬조 공연으로 유세를 대체하고 장소를 이동했지만, 일시적으로 공연 음악 소리와 겹치면서 영화를 관람하던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현장에서 만난 전다은씨(33)는 "영화제는 이미 예정됐던 행사였는데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선거 공해'가 유권자의 일상을 침해하고 있다. 미디어 발전으로 정보 소비 패턴이 달라졌지만, 유세 현장은 여전히 수십년 전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다.
2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다음 달 3일 열리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지난 21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13일이다. 이 기간에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공개된 장소에서의 연설·대담, 선거 차량 및 확성기 사용, 선거 벽보와 현수막 게시 등이 전면 허용된다.
이 가운데 시민들의 불편이 큰 '소음'은 체감도와 법적 기준 사이 괴리가 크다. 유세 차량에 부착된 확성장치의 소음 기준은 127㏈ 이하로 제한된다. 시·도지사의 경우 150㏈ 이하로 더 높다.
현행법상 제한 기준인 127㏈은 전투기 이착륙 시 발생하는 소음 약 120㏈보다 크다. 직장인 박모씨(36)는 "간만에 주말에 밀린 잠을 자며 쉬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로고송이 쾅쾅 울려 잠에서 깼다"며 "괜스레 해당 후보에 대한 반감만 생긴다"고 토로했다.
선거 공해는 소음에만 그치지 않는다. 선거 기간 일방적인 문자 폭탄을 넘어 유권자의 사적 영역인 모바일 메신저까지 침범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경기 수원시에 사는 한 유권자가 최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울시 교육감 후보 유세 카카오톡 단체방에 초대됐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세차량들의 도로 불법 점유도 문제다. 인천의 한 지역구에선 특정 후보자의 홍보 문구와 사진으로 도배된 유세차량(승합차)이 도로 위에 당당히 무단 주차돼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해당 차량이 주차된 곳은 황색 사선으로 표시된 '안전지대'로, 차량 진입이 금지된 구역이다. 더구나 횡단보도 및 교차로와 인접해 거대한 차체가 다른 운전자의 시야까지 가로막고 있었다.
시민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후보들의 차량이 정작 보행 안전과 교통안전을 가장 먼저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교차로·횡단보도·건널목 및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의 보도 등은 주정차 금지 구역이다. 선거 유세차량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없다. 한 운전자는 "유세차량에 가려 좌측에서 오는 차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직접 차 머리를 밀어 넣기 전까지는 시야 확보가 불가능해 아찔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는 시대 변화와 유권자의 다양해진 성향에 발맞춰 유세 방식의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공약을 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거 운동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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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勢) 과시용으로 대면 활동이 효과적인 면은 있지만, 법이 허용한다는 이유로 무작정 기존 방식을 강행하기보다는 물리적 충돌이나 통행 방해를 줄이고 유권자들의 선호를 세심하게 고려하는 유세 문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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