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모든 것이 조작된 것처럼 보인다.
경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 그건 조작됐기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에 질렸는가? 그것도 마찬가지다. 워싱턴·새크라멘토·오스틴·올버니의 선출직 지도자들에게 좌절감을 느끼는가? 이 역시 모두 날조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권자들이 국가의 문제라고 느끼는 거의 모든 사안을 '우리'를 희생시켜 부와 권력을 쌓으려는 것이라 한다. 보이지 않는 세력의 음모로 규정한다. 여기에는 본인이 패배한 선거도 포함한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후보 시절 애리조나주에서 겪은 패배를 언급하면서 "조작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메인주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수전 콜린스에 도전하는 당내 후보인 그레이엄 플래트너는 출마 선언 영상에서 "나는 적을 지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적은 과두세력(oligarchy)"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경쟁 상대에 대해 정치·경제를 흔드는 소수 집단이라 표현한 것이다.
올해 재선에 도전하는 조지아주의 민주당 상원의원 존 오소프도 비슷한 발언을 내놨다. 그는 "문제는 여러분이 아니다. 국민의 대표들이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그들은 후원자들과 특수이익집단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은 예외라는 듯 말이다.
현직 의원이든, 정치 신인이든, 사회 문제의 책임을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나 지지율이 부진한 대통령·집권 여당 탓으로 돌리는 것은 흔한 정치적 대응이다. 그들은 자신만이, 혹은 아직 권력을 잡지 못한 자기 진영만이 망가진 경제와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메시지는 유권자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는다. 유권자가 처한 열악한 상황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정부, 제도 등 현재 유권자가 속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또 이 시스템의 핵심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순진한 바보처럼 만든다. 또 '조작'이라는 말은 유권자에게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들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 정부와 제도가 이런 정책 실패를 충분히 바로잡을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말이다.
'중도는 어떻게 무너졌는가?'의 공동 저자인 니컬러스 제이콥스 콜비 칼리지 교수는 이런 주장을 두고 "미국의 주류 전통 바깥에서 무언가 하도록 허가를 내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시스템을 아예 폭파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는 "좌우 양측은 이런 언어를 이용해 자신들이 점점 더 벌여온 헌정 질서 차원의 강경 정치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정치 역학은 이른바 '시스템 내부'에서 움직이는 선출직 공직자·정책 입안자·관료들이 유권자의 정당한 불만을 해결하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들은 이 시스템 내부에 있기에 시스템을 보호하려 하게 된다.
지금의 조작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당시 본격화시킨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역사상 처음 등장한 문제는 아니다. 미국 정치에는 늘 일정 수준의 포퓰리즘과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었다. 실제로 정치·사회 제도가 특정 계층에 유리하게 설계·운영됐던 시기도 존재한다. 19세기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진 짐 크로우 시대다. 이때는 흑인들이 정치 참여와 일자리, 시민사회에서 배제됐다.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자들은 미 법무부(DOJ)가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제임스 코미와 일부 민주당 의원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들을 겨냥하도록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DOJ는 이번 주 이른바 '반(反) 무기화 기금'을 발표했다. 약 18억달러의 세금이 연방수사기관으로부터 부당한 표적 수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대상에는 트럼프 측근 다수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게리맨더링 제도는 어떤가. 이번 중간 선거구 조정 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일이다. 당연히 보기 좋지 않을 뿐더러, 정치적으로 해롭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조작됐다는 뜻은 아니다. 미 정치인들은 건국 초기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의회·주 의회 선거구를 그려왔다. 정파적 목적의 선거구 획정 또한 법원으로부터 합헌 판결을 받았다.
연방대법원의 6대 3 보수 우위 구도도 마찬가지다. 9명의 대법관은 모두 민주당·공화당 소속 네 명의 현직 대통령들에 의해 합법적으로 지명됐고, 미 상원 인준을 받았다.
정부와 경제 시스템을 사실상 범죄 조직처럼 몰아가는 것을 넘어 '조작됐다'는 표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을 심어준다. 어차피 경제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지역사회가 끝없이 쇠퇴하고 있다면 왜 이를 개선하려 애써야 하는가. 내 표가 무의미하다면 왜 투표를 통해 정부 방향을 바꾸려 애써야 하는가 말이다.
이런 냉소적 인식은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실제로 퍼지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의 청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19~29세 가운데 '올해 중간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믿는 비율은 33%에 불과했다. 또 50%는 '나 같은 사람들은 정부 결정에 아무 영향력이 없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2017년보다 15%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미국인들에게 계속해서 "모든 게 조작됐다"고 말하다 보면, 사람들은 제도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결국에는 그 시스템 자체를 뒤엎으려 들 가능성이 커진다. 2021년 1월6일(미국 의사당 난입 사태)을 기억하라.
데이비드 드루커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America's 'Everything Is Rigged' Era Is Toxic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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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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