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만드는 피아첸티누 치즈
16세기 베네치아가 왕족에 바친 선물
도시 국가의 음식 외교, 지금도 이어져
중세가 저물고 르네상스가 시작된 16세기. 유럽의 기독교 왕국들과 중동의 이슬람 사이 균형을 맞춘 보물이 있었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치즈'. 유럽과 중동 사이에서 향료를 중개하며 번영을 꾀했던 도시 국가 베네치아는 고급 치즈로 왕과 술탄들을 현혹했다. 당시 베네치아에서 흘러나온 치즈는 왕족이 자기 목숨보다 애지중지하는 사치품이자 전략 자산이었다.
음식 외교 시작한 나라는 르네상스 베네치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2020년 출간한 역사 서적 '음식과 권력'에 따르면, 현대적인 음식 외교를 시도한 최초의 국가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이다. 당시 부유한 도시 국가였던 베네치아는 중동, 유럽을 아우르는 중개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는데, 관료들은 도시를 방문하는 손님에게 수많은 선물을 안겨주어 재력을 과시하고 환심도 샀다.
외국 사절이나 지도자에게 비싼 선물이나 조공을 바치는 관례는 고대부터 존재했지만, 베네치아는 도자기, 보석 등 사치품 대친 음식을 선물했다. 베네치아가 즐겨 선물한 음식은 후추, 설탕, 혹은 설탕을 입혀 달콤한 맛을 낸 견과류였다. 하지만 일반 사절이 아닌 왕족, 술탄들에게만 내주는 진귀한 선물도 있었는데, 바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고원지대 엔나에서만 만드는 피아첸티누 치즈다.
전략 수출품의 향연이었던 베네치아 '치즈'
피아첸티누는 딱딱한 경질 치즈로, 고원지대에서 자란 양의 젖으로 만든다. 양의 젖은 고소하지만 냄새가 고약한 것으로 유명한데, 엔나 주민들은 값비싼 사프란을 잔뜩 넣어 악취를 지우고, 통후추를 치즈 속살에 박아 매콤한 맛을 냈다. 샤프란, 후추 같은 향신료는 유럽 및 중동의 자산가들은 모두 탐내는 '전략 수출품'이었다. 이런 식자재를 아낌없이 사용한 치즈를 선물로 준다는 것 자체가 베네치아의 재력을 과시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베네치아는 부유한 도시 국가였지만, 열강들에게 둘러싸인 약소국이기도 했다. 특히 베네치아는 향신료 중개 무역으로 돈을 벌었는데, 향신료 수출국인 이집트나 인도, 열강인 포르투갈이나 오스만 제국의 눈치를 치열하게 살펴야만 했다. 16세기 초 이들 열강 사이의 갈등이 커질 때마다 베네치아 사절단은 피아첸티누 치즈를 품에 안고 국왕들과 술탄들을 방문했으며, 그들의 환심을 사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일부 국가는 베네치아산 치즈를 특별 대우하기도 했다. 1666년 영국 수도 런던 한복판에서 대화재가 났을 때도, 베네치아산 파마산 치즈는 특별 보호 목록으로 분류돼 급히 이송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지금도 이어지는 음식 외교
음식으로 자국의 부와 농업 생산, 풍부한 문화유산을 과시한 베네치아식 외교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 나라가 외교관이나 국가 정상이 방문했을 때 여러 음식이 든 '웰컴 키트'를 제공하곤 한다. 앞서 일본은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문 당시 일본식 화과자인 모나카를 선물했다. 모나카는 찹쌀가루로 만든 피 안에 달콤한 소를 채운 과자인데, 해당 과자는 나라현에서 재배한 감으로 앙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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