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과거 법리 유지,
현장은 새 기준 충돌 우려

[기자수첩]9년 끈 현대중공업 판결…갈등 봉합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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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 사건에서 "원청은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2017년 소송 제기 이후 9년4개월 만이다. 전원합의체 판단이라는 점에서 노동계와 산업계 모두 큰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현장 반응은 예상보다 차분하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단체교섭 의무까지 져야 하는가였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있는 자"라며 기존 법리를 유지했다.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책임 가능성과 단체교섭 의무는 별개라는 취지다.

법리만 놓고 보면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 판례를 재확인한 성격에 가깝다. 문제는 시간이다. 9년이 걸렸다. 그 사이 노동 현장은 이미 크게 바뀌었다.


결정적으로 올해 3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됐다. 개정법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했다. 사실상 원청 사용자성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번 사건은 개정 전 법률이 적용됐기 때문에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유지했지만,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노동위원회와 일부 하급심은 이미 '실질적 지배력'을 폭넓게 인정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이번 전원합의체에서도 4명의 대법관이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면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전원합의체에서 8대4로 의견이 갈렸다는 사실 자체가 향후 법리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번 판결을 '갈등의 종결'보다 '과도기적 판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 대법원이 종전 법리를 유지했지만, 입법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본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회적 기준선을 정리하는 기능을 한다. 특히 노사 갈등처럼 첨예한 사안일수록 법원이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면 산업 현장도 그 기준에 맞춰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판례는 단순한 법 해석을 넘어 사회 갈등의 마침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다르다. 법원은 과거 법리를 유지했지만, 국회는 이미 사용자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다. 현장은 어느 기준을 따라야 할지 다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들은 "개정법 적용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불확실하다"고 말하고, 노동계는 "실질적 사용자와 교섭해야 한다"는 입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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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이 남긴 것은 명확한 기준이라기보다, 오히려 한국 노사관계가 '입법'과 '판례' 사이의 충돌 구간에 진입했다는 현실이다. 대법원은 과거 법리를 유지했고, 국회는 미래 기준을 바꿨다. 그 사이 현장은 혼란을 떠안게 됐다. 9년을 끌어온 사건 치고는 지나치게 늦었고, 그래서 오히려 영향력도 제한적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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