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ew]AI는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중간'을 무너뜨린다
데이터 뒤 '맥락 읽기' 요구하는 조직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할 자체의 변화
관리보다 판단… 피라미드 구조 실종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기업들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조금 다르다. AI가 먼저 흔들고 있는 것은 특정 직업 자체보다 회사 내부의 구조, 특히 중간층의 역할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와 미국 컨설팅 업계에서는 최근 팀은 더 작아졌는데 결과물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과거에는 여러 명의 주니어 직원이 며칠 동안 만들던 자료를 이제는 한 명이 AI와 함께 몇 시간 만에 처리하는 일이 흔해지고 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생산성 향상처럼 보이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다. 기업이 더 이상 예전만큼 많은 '중간 단계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 대기업 조직은 피라미드 구조였다. 소수의 임원이 방향을 정하면 중간관리자가 이를 정리해 전달했고, 주니어 직원들은 데이터를 모으고 보고서를 만들며 조직의 실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간층은 단순히 일을 관리하는 역할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정보를 연결하고 번역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바로 이 연결 비용을 급격히 낮추고 있다. 예전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던 정보 정리, 요약, 보고서 초안, 데이터 분석 같은 작업들이 AI를 통해 즉시 처리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업무가 빨라지는 것이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굳이 많은 중간 단계를 유지할 이유가 줄어드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변화가 제조업보다 오히려 화이트칼라 조직에서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일부 기업이 신입 채용을 줄이는 대신 소수의 고숙련 인력과 AI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는 'entry-level white collar recession(초급 사무직 불황)'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단순 반복 업무를 담당하던 초급 사무직의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고용 감소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커리어의 사다리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다양한 지식 노동은 반복적인 실무를 통해 학습되는 구조였다. 신입 컨설턴트는 자료조사를 하면서 산업 구조를 배웠고, 주니어 변호사는 판례 검토를 반복하며 논리를 익혔다. 겉으로 보면 단순 업무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런 과정은 조직이 미래의 전문가와 관리자를 길러내는 훈련 단계이기도 했다. 그런데 AI가 그 입문 단계를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앞으로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새로운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AI 시대의 핵심 변화는 단순히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직 안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할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가깝다. 정보를 전달하고 정리하는 능력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반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며 조직의 맥락을 읽는 능력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좋은 중간관리자가 보고와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앞으로는 복잡한 상황을 해석하고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아이러니한 점은 AI가 발전할수록 조직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능력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는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조직 내부의 미묘한 긴장, 사람 간 신뢰, 정치적 맥락까지 이해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많은 경영 의사결정은 데이터 자체보다 누가 이 결정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다.
결국 생성형 AI는 단순히 업무 자동화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기업 조직의 형태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기업이 거대한 피라미드 조직을 통해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훨씬 더 얇고 작은 팀 중심의 구조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단순히 더 많은 인력을 보유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적은 인원으로 얼마나 빠르게 판단하고 협업하며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중간'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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