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원 공중분해 될 뻔"…멈췄다간 죄다 쓰레기통, 24시간 풀가동 반도체 공정[테크토크]
500개 공정 거쳐 만드는 반도체 웨이퍼
단 하루 멈춰도 전량 폐기할 위험 있어
기술력 아닌 근면함이 반도체 제조 핵심
삼성전자 초기업 노동조합(초기업노조)의 총파업 예고는 전국적인 파문을 불러왔습니다. 이재용 회장과 삼전 사장단이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는가 하면, 정치권까지 개입 의사를 보였지요. 김민석 국무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긴급 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일 밤 삼전 노사가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당장의 파업 위기는 모면했지만, 만일 총파업이 실제로 이뤄졌다면 피해액은 최대 100조원에 이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개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금액이지요. 팹(Fab)이 단 하루의 가동 중단도 버틸 수 없는 이유는 반도체 특유의 첨단 공정 때문입니다.
500개 공정 거치는 웨이퍼…조금이라도 멈추면 망가져
반도체 생산의 기본은 웨이퍼(기판)입니다. 실리콘 잉곳을 잘라 만든 얇은 원판에 빛으로 회로도를 새기고,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고, 원자 단위 박막을 씌우고, 금속 배선을 연결한 뒤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양품만 골라내고, 완성된 칩을 떼어내 패키징하지요. 흔히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을 '8대 공정'이라고 칭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약 500가지 넘는 첨단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각 공정은 최소 수백억원, 최대 수천억원에 달하는 최첨단 장비를 동원합니다. 게다가 특수 산업 가스와 불순물 한 점 안 들어간 초순수, 먼지 입자 한 톨도 용납할 수 없는 최고 수준 클린룸 환경이 요구되지요. 직경 150~300㎜ 수준의 작은 원판에 불과한 웨이퍼 한 장 제조 비용이 고급차 한 대와 맞먹는 이유입니다.
반도체 공정은 너무 비싸기 때문에 팹을 다루는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를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웨이퍼가 칩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24시간 내내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제조 비용을 최대한 억누르는 겁니다. 공장이 시도 때도 없이 중단된다면, 팹 운영 비용을 감당할 기업은 한 곳도 없을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반도체가 온갖 가스·화학 물질을 필요로 하는 데다, 단 한 톨의 먼지 입자에도 망가질 만큼 취약하다는 겁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웨이퍼는 삽시간에 오염되거나 파손되며, 이런 웨이퍼는 불량으로 취급돼 전량 폐기됩니다. 삼전이나 SK하이닉스, TSMC 등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운영하는 팹은 매달 수십만장의 웨이퍼를 칩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하루만 멈춰도 생산라인 전체의 웨이퍼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피해액은 금세 천문학적인 규모로 불어나겠지요.
반도체 생산, 첨단 기술 뒤엔 직원들 희생
갑작스러운 팹 중단으로 위기를 경험한 반도체 기업도 있습니다. 바로 대만의 TSMC입니다. 1999년 대만에는 일명 '921 대지진'이라 불리는 규모 7.7의 강진이 강타했습니다. 당시 타이중, 신주과학단지의 팹이 지진으로 가동 중단됐지요. 이곳은 전 세계 위탁생산(파운드리)의 54%, D램(RAM)의 10.3%를 책임지던 곳이었습니다. TSMC의 모든 임직원이 달려와 단 2주 만에 공장을 복구했지만, 이미 월간 평균 웨이퍼 생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17만장이 완전히 오염된 상태였습니다. TSMC는 이 해에 막대한 비영업 손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타격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반도체는 제조 기업이 손에 꼽는 산업이기에 극단적인 경쟁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대만 반도체 생산량이 줄어들자 칩 가격은 폭등했고, 한국 기업들은 즉각 반사이익을 얻었습니다. 이후 대만 반도체 업계는 설령 천재지변이 벌어져도 절대 팹 가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로 내진 설계를 연구했으며, 그 결과 2024년 규모 7.2의 대지진이 덮쳤을 때도 큰 피해 없이 생산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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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웨이퍼 특유의 극단적인 취약성, 24시간 내내 반드시 공장을 돌려야 한다는 특수성이야말로 반도체 제조업이 힘든 진짜 이유입니다. 화려한 장비나 첨단 기술보다도, 밤낮없이 생산라인을 지켜보는 직원들의 근면함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팹을 설립했을 때도, 진짜 장벽은 기술이 아닌 근로 문화였습니다. 2024년 뉴욕 타임스(NYT)의 보도에 따르면 TSMC 경영진은 미국 지사에 주말 근무, 야간 비상 업무 등을 강요했지만 직원들은 완강히 반대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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