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소상공인에겐 너무 먼 일·가정 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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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육아를 하는 동안 대신 일해줄 사람이 없어서 결혼이 망설여져요. 소상공인을 위한 육아 관련 정책이 부족하다 보니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하는 게 보통의 수순입니다."


올해로 9년째 쿠키 판매점을 운영 중이라는 30대 여성은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정부와 자치단체들이 그간 꾸준히 출산·육아 휴직 제도를 보완해왔지만 소상공인들에겐 남 얘기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육아휴직은 고용보험의 테두리 안에서 작동하다 보니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닌 자영업자는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일·가정 양립은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회사원들에게만 통용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표어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이날 한 장관을 만난 소상공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공백'이었다. 육아로 인한 경영 공백에서 일하는 동안 마주하는 돌봄 공백에 이르기까지, 고비고비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유형의 공백은 결국 일과 가정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30대 자영업자 비중은 11.8%, 40대는 18.2%다. 자영업자의 약 30%가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는 연령대인데 이들을 위한 육아 지원 제도는 여전히 유명무실하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간담회에서 엿본 소상공인들의 표정에선 이런 현실에 대한 냉소와 허탈감이 짙게 묻어났다. 더욱 씁쓸한 건 "내가 남들처럼 직장에 다녔더라면" "부부 중 한 명이라도 회사원이었더라면" 같은 자책의 목소리였다. 파티플래너로 일하면서 생후 15개월 된 아기를 기르는 장미화 플랜제이 대표는 "프리랜서에게 지급되는 지원금 150만원도 자영업자인 남편에겐 해당하는 게 없었다"며 "육아휴직을 쓰는 회사원에 비하면 정말 적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고용보험 미적용자에게 지급되는 출산급여 기준도 1인 여성 사업자나 프리랜서·특수고용직 등 일부에만 적용돼 효용은 제한적이다. 김난주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상공인들에게 이런 문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인 냉혹한 현실"이라면서 "급여를 받는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를 이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대체인력뱅크 같은 대안적 제도로 선택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혀주는 방안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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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소상공인들이 사업을 유지하면서 성장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징검다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중기부는 이를 위해 재정당국과의 정책 협의를 이어 나아가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속도와 결과물이다. 정부가 이렇게 공언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반신반의하다가 끝내 자포자기하고 무언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힘겨운 표정과 목소리를 한 장관이, 그리고 정부가 반드시 기억하고 되새기길 바란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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