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藥국가]⑲한번 더 안아줄 걸, 엄마는 아직 후회한단다
■ 5장. 마약, 다함께 해결해야 한다
조용했던 아들, 채팅 앱 여성이 마약 보내
가족 위해 맞벌이…들여다보지 못한 아들
"아들과 함께 사라져버릴까 고민하기도"
아시아경제는 마약류 범죄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삶까지 무너뜨리는 파괴적인 확산성을 가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가정이 붕괴하는 과정은 처절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부모의 고통 섞인 당부야말로 그 어떤 제도적 대안보다 강력한 경고가 될 것이다. 여기, 늪에 빠진 자녀를 끝내 놓지 못한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독백의 형식으로 기록한다.
#. 20대 아들의 투약 바라본 40대 이은희씨(가명)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었어요. 지난해 5월, 지금 생각해보니 어버이날이었군요. 남편이 보이스피싱 같다고 하기에 전화해보니 경찰이었어요. 일하다 말고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부여잡고 달려갔어요. 내 아들이 아니었어요.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에 흠뻑 젖어 있었어요.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모든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아들을 차가운 유치장에 남겨두고 돌아서는데 눈물도 나지 않았어요. 도무지 믿기지 않았어요. 매일 밤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죽어야겠다' 하다가도 '아이를 두고 어떻게 죽나' 이런 생각이 계속 싸웠어요. 신랑에게 그랬어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내가 아이를 차에 태우고 함께 바다로 직진하겠다고. 내가 안고 떠날 테니 다른 가족들은 걱정하지 말라고요.
고등학생 때가 시작이었대요. 벌써 6~7년이나 된 거였죠. 채팅 앱에서 나이가 조금 있는 여자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약을 보냈다는 거예요. 돌아보니 전조가 있었어요. 가끔 밤늦게 눈이 풀려 들어오거나 피부가 뒤집혔거든요. 화장실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을 때도 그저 술에 취해 그런 줄 알았죠. 술을 많이 마신다고 타박만 했지, 약 기운에 몸부림치는 건 줄 어찌 알았겠나요.
우리 부부는 맞벌이였어요. 정말 악착같이 살았거든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회사 일 열심히 하고, 이게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내 아이가 마약이라니요! 아들은 참 순했어요. 묵묵히 잘 크고 있는 줄 알았어요.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어릴 때부터 공부로 몰아붙인 게 자존감을 갉아먹은 건 아닐까, 원하던 학과 대신 취업이 잘 되는 대학으로 가라고 강요한 게 벽을 만든 건 아닐까. 모두 제 탓 같았습니다.
종일 불안했습니다. 전화만 울려도 심장이 내려앉았어요. 아들이 차가운 방에 홀로 누워 투약을 하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어요. 남편도 무너졌어요. 평소에는 표현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고요. 처음에는 아들이 중독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젊은 친구들은 바닥까지 가보기 전에는 단약의 필요성을 많이 못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하루는 아들이 끝끝내 마약을 끊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내 아들이니까요. 경찰에서 알려준 교육센터나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 재활센터까지 모조리 찾아다녔어요. 쉽지 않았어요. 단약을 하다가도 자꾸만 재발했죠. 다시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다그치는 대신 따뜻한 말을 건넸고 돌아오길 기다렸어요.
가장 속상했던 건 밑바닥까지 와서야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아들이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이었어요. 무뚝뚝한 남편이 아이를 끌어안고 엉엉 통곡했어요.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이제 아빠한테 죽었다' 했는데 부모님이 날 사랑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대요.
아들이 며칠 전 처음으로, 살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했답니다. 중독에서 회복되는 과정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강사가 되고 싶대요. 아니면 아빠를 따라서 포크레인도 배워보고 싶다고 했어요. 대학마저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 가야 했던 아이인데…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요. 그저 꽉 안아주고 싶어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테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난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주고 싶어요. 왜 진작 그러지 못했는지 후회와 고통 속에 지냈습니다. 회사도 그만뒀습니다. 오로지 아들 곁을 지키려고 해요. 사회복지와 중독 상담을 공부하려고요.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아들의 단약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어요. 앞으로 10년, 아니 평생 이런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우리 아이가 다시 늪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곁을 지키는 것뿐이에요. 마약은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습니다.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가족 모두를 무너뜨리는 형벌과 같아요. 제발 누구도 이런 지옥으로 발을 들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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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장희준 오지은 박호수 이지예 박재현 기자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약류 중독 문제는 24시간 상담전화 ☎1342로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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