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藥국가]⑰재범률 낮춘 美…"약물재판부 도입하자"
■ 5장. 마약, 다함께 해결해야 한다
미국, 약물법원 도입해 재범률 절반으로
판·검사, 변호사, 치료전문가 등 팀 구성
회복적 사법 기능 강화…치료 실효성 ↑
전문가 "전담재판부 도입 실효적 대안"
범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면 사법부 영역에선 '약물전담재판부'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독성·의존성 등 마약류 범죄의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 판사를 육성하는 한편 치료를 강력히 연계하는 판결로 회복적 사법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약물법원(Drug Court)을 도입한 미국은 마약류 사범 재범률을 60% 가까이 낮췄다. 경제적·사회적 비용까지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판사가 '심판자'에 머물지 않고 직접 치료 과정을 감독하며 재활 성적에 따라 형량을 조정하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 결과다.
재범률 절반으로 낮춘 미국의 '회복적 사법'
22일 미국의 비영리단체 올라이즈(All Rise)에 따르면 약물법원은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을 최대 58% 낮췄다. 지난해 텍사스주 미들랜드 카운티 약물법원의 재범률 연구에선 치료 프로그램 이수 이후 97%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재범률이 무려 3%까지 낮아진 것이다. 반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거나 이수하지 못한 피고인은 절반이 재범했다.
약물법원 제도의 핵심은 중독을 범죄가 아닌 질병으로 보고 비폭력 범죄자에 대해서는 감옥 대신 치료 프로그램으로 회복과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것이다. 미국에선 연간 12만명이 약물법원을 거쳐 간다. 프로그램 이수자는 누적 100만명을 넘었다. 교도소 수감 비용이 연간 5만달러인 데 반해 약물법원에서의 재활 비용은 8000~90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2011년 11월 미국 국립사법연구소(NIJ) 연구에선 약물법원 프로그램 참여자의 재범률이 40%, 비교집단(비참여자)은 53% 수준이었다. 여기서 58%가량 낮췄다는 분석을 고려하면, 약물법원 이수자의 재범률은 16% 수준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재범률은 33~36%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경제적 효과도 확실했다. 사법비용과 위탁보호비용 절감 등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대상자 1인당 평균 6000달러(약 900만원), 총 1억6800만달러(약 2520억원) 규모의 비용을 절감했다. 이수자의 사회 복귀로 1인당 2만5921달러(약 3888만원)의 경제적 이익도 창출했다.
판사, 단순 심판자 아닌 재활 조력자로 전환
미국은 1970년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실패했다. 치료 대신 처벌에 편중된 정책은 공급망의 다변화를 불러왔고 해외 생산지가 늘어나는 '풍선효과'를 일으켰다.
올라이즈는 판사가 법정에 들어설 때 외치는 '모두 기립(all rise)'이란 표현에서 나온 명칭이다. 약물법원 등 '문제해결형 법원'의 표준과 가이드라인을 정립하는 기구다. 이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와 영향력을 갖고 있다. 미국은 1989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처음으로 약물법원을 도입했다. 처벌 이후 적절한 치료 없이 재범이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프로그램 참여가 결정되면 약 1년 주기의 치료가 시작된다. 판사를 중심으로 검사·변호인·보호관찰관·치료전문가 등이 팀을 이뤄 참여자를 관리한다. 2~4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법원에 출석한다. 상시적인 불시 약물검사도 받는다. 전문 치료기관에서 치료·상담을 병행한다.
법원은 치료 진행을 지속적으로 보고받고 즉각적으로 보상이나 제재를 부과한다. 약물검사 음성 결과가 반복되면 치료 비용을 지원하고 위반 시엔 외출 제한, 단기 구금 등 조치를 내리는 식이다. 약물법원은 지난해 기준 미국 전역에서 3881곳으로 늘었다. 성인·재향군인·음주운전·청소년 등 영역도 세분돼 있다. 단 성범죄나 중대한 폭력범죄 등은 참여가 제한된다.
"현실적 대안…전담재판부 형태로 도입하자"
미국의 약물법원 체계는 한국의 상황에도 여러모로 부합한다는 평가다. 한국도 역대 모든 정부에서 마약류 범죄를 절대악으로 여기고 처벌 중심의 정책을 폈다. 그러나 치료·재활이 동반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범죄가 늘었고, 최근에는 IT 인프라를 타고 폭증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약물법원 등 회복적 사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지난한 입법을 거쳐야 하는 법원조직의 변화보다 '약물전담재판부'를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책으로 거론된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충분히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미국에서도 재활 치료를 수료한 사람들의 재범률이 상당히 낮고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고 알려졌다"고 평가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시절 마약 수사를 담당했던 김희준 법무법인 LKB평산 대표변호사는 "시급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약물전담재판부를 설치한 뒤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이행하면 종결,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정식 재판에 회부하는 방식을 쓰자"라고 제안했다.
조윤오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사법부의 패러다임이 문제해결형 법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 주목했다. 조 교수는 "유무죄를 따지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며 "사범이 많이 늘어났고 청소년 문제까지 심각해진 만큼 약물법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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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전문성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명감을 가진 소년판사가 떠난 일화를 전하며 "재판관은 순환보직이기 때문에 마약·사이버 범죄 특화 법원을 제안했을 때도 실현하기 어려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회복적 사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축적할 수 있는 사법부의 인사 혁신이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특별취재팀|장희준 오지은 박호수 이지예 박재현 기자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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