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정권 평화헌법 개정 시도
2차대전 참상 겪은 노년층 중심 반발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매년 5월 초만 되면 일본 열도는 황금연휴, 이른바 골든위크(Golden Week)를 맞아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가족 여행과 휴식으로 흩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국제적으로 화제가 됐다. 작은 시위조차 보기 어려운 일본에서 수만명의 시민들이 헌법을 수호해야한다며 피켓을 들고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평화헌법 개정에 반발한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것이다.
5월3일 일본 헌법기념일에 7만명 시위…평화헌법 개정에 반대
지난 5월 3일, 일본 헌법기념일을 맞아 도쿄에서만 5만 명 이상이 집결했다. 전국적으로는 200곳이 넘는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열렸으며, 총 참가자 수는 7만 명을 웃돈 것으로 집계됐다. 이 시위를 주도한 '평화 헌법을 지키기 위한 긴급 행동'이라는 시민단체는 지난 3월 초부터 매주 주말 집회를 이어왔다. 그동안은 2만~3만 명 규모에 머물렀지만 골든위크를 기점으로 참가자 수가 급격히 불어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민들이 수만 명 규모로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서는 모습이 일본에서 이렇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상 전무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시위의 도화선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 2월 총선 압승 이후 공개적으로 선언한 개헌 추진이었다.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며 전체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단독으로 확보하자, 총리는 곧바로 일본 헌법 9조, 이른바 '평화헌법' 개정을 공식 의제로 올렸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전부터 이 조항의 폐기를 주장해 온 대표적인 강경 보수 정치인으로, 이번 집권을 계기로 오래전부터 견지해 온 신념을 본격적으로 국정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일본 헌법 9조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제정된 조항으로, 그 내용은 단호하다. 전쟁, 군대, 교전권을 일본이 영구히 포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부전(不戰)의 맹세'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 조항은 1946년 연합군 점령 하에 만들어진 일본 헌법의 핵심으로, 이후 수십 년간 일본의 대외 군사 행동을 제도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 조항 때문에 일본은 현재 군대 대신 자위대를 두고 있으며, 자위대는 자국 영토가 침범받을 때만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제한적 성격의 공무원 조직으로 규정돼 있다.
다카이치 총리와 집권 자민당은 헌법 9조를 폐기하고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전환해, 동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해외 파병도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현행 체계에서는 외국의 탄도 미사일이 날아오더라도 자국 영토 밖에서는 요격이 불가능한 구조적 한계가 있는데, 이것 역시 안보상의 공백으로 지적되며 개헌 논의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2차대전 참상 겪은 노년층들 중심 반발…국민 대다수가 반대
시위대의 반발은 거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한 노년층의 강한 참여다. 전쟁 당시 일본의 사망자는 300만 명 이상으로 집계된다. 미군의 공습은 도쿄를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폭탄이 실전 투하됐다. 패전 이후에는 연합군 군정이 7년간 지속되면서 재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더 나아가 전쟁 막바지 일본 군부는 전투원들에게 마약을 지급했는데, 이로 인해 전후 귀환한 병사들 중 50만 명 이상이 마약 중독자가 되어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러한 참상을 몸소 겪은 세대에게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복귀는 공허한 이념 논쟁이 아니다. 다시는 그 길로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뼛속 깊이 박혀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로의 회귀가 또 한 번 일본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극우 단체나 개헌 찬성 세력의 주축은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40대 이하 젊은 세대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80% 이상이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80%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총리가 개헌을 밀어붙이는 배경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현실과 일본 국내 정치의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동인은 대만 해협 문제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대만 해협 유사시 일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일본 입장에서도 대만은 남단 오키나와와 인접한 지역이며, 대만 해협은 일본이 수입하는 원유, 식량, 원자재가 오가는 핵심 수송로다. 사실상 경제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이 해역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일본으로서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일본 정부는 이미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미국산 F-22, F-35 전투기와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 첨단 무기를 대규모로 수입하고, 대만과 인접한 해역에서 미군과의 합동 훈련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모두 유사시 미군과의 공동 대응을 위한 사전 준비로 해석된다. 미국과 서방 정보 당국에서는 2027년 이후 대만 해협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으며, 일본 정부 역시 이 시간표를 의식하며 개헌을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내 정치적 계산도 빼놓을 수 없다. 자민당은 이번 중의원 선거 압승으로 단독 개헌 발의 요건인 3분의 1 의석을 확보했다. 다만 참의원에서는 아직 의석수가 부족해 단독으로 개헌을 통과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분석가들은 다카이치 정권이 2028년 참의원 선거 승리를 목표로 지금부터 개헌 여론을 지속적으로 조성하는 밑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지금의 개헌 드라이브는 즉각적인 헌법 개정보다는 장기적인 정치 전략의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다.
평화헌법 개정, 일본 재무장시 동북아 정세에 큰 충격
흥미로운 것은 이 개헌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미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헌법 자체가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요구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제 미국의 요청으로 이를 해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1990년대 일본 경제가 세계 2위를 구가하던 시절, 일본은 미국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전투기를 개발하거나 방위산업 독립을 시도하다가 미국의 제지를 받은 전례가 있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과 전쟁을 벌인 과거가 있는 일본이, 재무장 이후 미국의 의도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군사 행보를 걸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해상 자위대는 현재도 이지스 구축함 전단과 미국에서 대량 도입한 최첨단 전투기 전력만 따지면 중국이나 한국에 거의 필적하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헌법의 족쇄가 풀려 정식 군대로 전환되고 해외 파병과 단독 교전이 가능해진다면, 이 전력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언제든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적이다. 일본은 현재 러시아와 홋카이도 북부의 북방 4도, 중국과 조어도(센카쿠 열도), 한국과 독도를 둘러싸고 해양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자위대가 군대로 전환될 경우 이들 분쟁 지역에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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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서는 이 문제가 남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경험을 안고 있는 한국 국민에게 일본의 재무장화, 그리고 '정상 국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군국주의로의 회귀 가능성은 단순한 외교 현안이 아니다. 만약 일본이 헌법 개정에 성공해 군사 행동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한국은 서쪽의 중국, 북쪽의 북한에 더해 동쪽의 일본까지 동시에 군사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사실상 삼면 압박 구도에 놓이게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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