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증거인멸 고도의 개연성 있어야"

대법원이 출국금지를 당하고도 통보받지 못해 공항에서야 사실을 알게 된 변호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출국금지 통지유예의 위법성 판단 기준을 대법원이 제시한 최초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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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8일 변호사 A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에서 쌍방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이로써 국가가 A씨에게 취소 수수료 85만5000원과 위자료 500만원 등 총 585만5000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이 성남FC 후원금 사건을 수사하면서 관련 단체의 감사를 지낸 변호사 A씨에 대해 법무부에 출국금지와 통지유예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법무부는 2022년 9월 A씨에 대한 출국금지를 결정하고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이후 두 차례 출국금지를 연장하면서도 통지를 유예했다. A씨는 같은해 12월 변호사 단체 교류행사 참석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가 처음으로 출국금지 사실을 알게 됐다. 당일 출국금지 해제 결정이 내려졌지만, 예약 항공편은 이미 출발한 뒤였다.

쟁점은 출국금지·연장 결정 자체가 위법한지와 이를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은 통지유예가 위법한지 두가지였다. 대법원은 출국금지 및 연장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출입국관리법이 정한 사유가 있고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통지유예에 대해서는 위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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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출국금지 통지유예의 위법성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명시했다. 출입국관리법은 출국금지 결정 시 즉시 당사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원칙을 정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범죄수사에 중대하고 명백한 장애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통지유예를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예외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출국금지 통지 자체로 인해 출국금지 대상자나 사건의 범죄혐의자·주요 참고인 등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통지유예가 허용된다는 취지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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