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병원 지으면 의료가 살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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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김없이 '대학병원 유치' '의과대학 신설' 공약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명분은 지역의료 공백 해소와 응급의료 체계 구축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의 면면을 보면 조만간 전국 어디서나 30분 거리에 대형 종합병원이 들어설 듯한 착각마저 든다.


우선 전남에선 목포와 순천이 국립의대 유치를 두고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동부권과 서부권에 각각 캠퍼스와 부속병원을 나눠 짓자는 '분리 설치' 방안까지 등장했다. 인구 180만명 지자체에 두 개의 대학병원을 세우겠다는 이 제안은 어떻게든 지역 내 갈등을 봉합하려는 정치적 전략이겠지만, 그 운영 효율성이나 재정적 자립 방안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천 제물포와 충남 공주, 전북 남원, 경북 안동 등에서도 국립의대와 공공의료원 확충 공약이, 경기도 남양주와 충북 충주 등에서는 상급종합병원 유치 계획이 나왔다. 경북에서는 포항공대(POSTECH)를 중심으로 의대와 국가전략병원을 세우자는 구상이, 울산에서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내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처럼 후보들이 앞다퉈 종합병원과 의대 설립을 약속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중증환자가 치료해줄 의사를 찾아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나 아기를 낳기 위해 먼 지역까지 이동해야 하는 '원정 출산'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 지역의료 확충은 곧 지역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역 유권자들에게 대학병원은 단순한 의료시설을 넘어 지역 가치를 높이는 핵심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후보마다,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대형 병원과 의대 유치를 지역 발전의 상징으로 포장하고, 유권자들 역시 '더 큰 병원, 더 좋은 의대'에 표심이 흔들린다.

하지만 제아무리 규모 있는 병원이더라도 충분한 환자 수요와 의료진 확보, 운영 재원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일부 지역에서 과거 야심 차게 추진하던 병원 사업이 개원 이후 적자에 시달리거나, 아예 계획 단계에서부터 좌초된 사례가 적지 않은 이유다. 더욱이 의대 설립은 지자체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법령상 정부의 승인과 정원 배정, 교육 인프라 검증 등의 절차를 거쳐야만 하니 지자체장 임기 4년 안에 마무리 짓기 어렵다.


무엇보다 병원 공급을 확대한다고 해서 곧바로 의료 격차가 해소되진 않는다. 의료 불균형의 근본 원인은 단순히 의료시설 부족이 아니라 인력의 편중, 필수의료 기피, 의료진의 열악한 근무 환경 등 구조적 요인에 있다. 대학병원을 하나 더 짓는다고 지방에 필수의료 인력이 안정적으로 정착한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인근 중소 병원의 인력마저 흡수하면서 또 다른 지역 불균형을 낳을 우려가 있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의대와 병원을 짓겠다는 약속이 나왔을 때 "재원은 어디서 확보하나" "중앙정부와 협의는 됐나" "교수진과 부속병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등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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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느끼는 지역·필수의료에 대한 불안은 분명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지켜지지 못할 공약과 표를 맞바꿔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건 새벽 2시에도 심장마비 환자를 받아줄 응급실, 고위험 산모도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산부인과, 암 진단을 받은 후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종양내과이지, 화려하고 규모만 큰 새 병원이 아니다.


조인경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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