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으로 1조 이상 부당이득
형사처벌 수위 지나치게 낮아
'전속고발권 폐지' 논할 때 아냐
고발창구·수사기관만 늘리는 셈
형사로 남길 사건 기준 정비 우선

1조원 넘는 부당이득을 챙긴 대형 카르텔이 적발돼도 형사 법정에서 기업이 내는 벌금은 2억원을 넘지 못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천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해도 기업들은 이를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여기고 대형 로펌을 앞세워 행정소송에 나선다.


담합을 근본적으로 억제하려면 결국 오너와 경영진 개인을 겨냥한 형사 책임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지금의 논의가 형벌 체계 정비보다 전속고발권 폐지나 수사권 재배분에 쏠리면서 정작 무엇을 형사 사안으로 남길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벌금 2억' 회삿돈으로 내면 그만…윗선 긴장시킬 '개인 책임' 필요[혼돈의 공정거래수사]⑤
AD
원본보기 아이콘

◆과징금은 회삿돈, 형사책임은 윗선 겨냥

법조계는 먼저 현행 공정거래법 형벌 체계의 '엇박자'를 지적한다. 담합은 대표적인 중대 공정거래 범죄로 꼽히지만, 담합 가담자에 대한 처벌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에 그친다. 이조차 실제 재판에서는 집행유예나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등 주요국이 장기 징역형과 거액의 형사 벌금까지 동원해 담합을 중대 범죄로 다루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 형사처벌 수위는 지나치게 낮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대형 로펌의 한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담합은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만으로는 억지력이 부족한데, 형사처벌 수위도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업 입장에선 과징금을 회사가 낼 돈으로 볼 수 있지만 대표나 임원 개인에게 형사 책임이 미치는 순간 압박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과징금은 회사가 부담하지만 검찰 수사는 오너와 경영진 개인의 구속·실형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담합처럼 고의성과 공모 구조가 뚜렷한 사건은 행정제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회삿돈으로 내는 과징금과 달리 개인 책임을 묻는 형사절차가 병행돼야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바꾸는 억지력이 생긴다는 논리다.

◆전속고발권 폐지보다 급한 '형벌 조항'

반대로 형사처벌 대상이 지나치게 넓게 열려 있는 점은 또 다른 문제다. 시장지배력 남용이나 부당지원처럼 고도의 시장 획정과 경제 분석이 필요한 사안까지 광범위한 형벌 조항 아래 묶여 있는 상태에서 고발 창구만 넓히면 과잉 형사화와 수사 혼선만 부추길 수 있다.


공정위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전속고발권을 손보려면 그것만 볼 게 아니라 형벌 조항을 같이 정비해야 한다"며 "담합 같은 중대 범죄는 남기되 나머지는 정교하게 덜어내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같은 공정거래 사건이라도 가격 짬짜미처럼 행위 자체의 위법성이 비교적 선명하고 강제수사가 필요한 사건과 경제 분석과 시장 판단이 핵심인 사건을 똑같이 형사 트랙에 올리는 것은 무리라는 취지다.


정치권 논의가 전속고발권 폐지와 수사권 재배분에만 쏠리면서, 정작 어떤 공정거래 사건을 형사로 남길지에 대한 기준 정비는 뒷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벌금 2억' 회삿돈으로 내면 그만…윗선 긴장시킬 '개인 책임' 필요[혼돈의 공정거래수사]⑤ 원본보기 아이콘

무분별한 고발권 확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전속고발권 폐지가 소비자 보호 강화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형벌조항을 그대로 둔 채 고발 창구만 넓히면 결과적으로 사건의 실체를 더 잘 밝히기보다 수사기관만 늘리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쟁사와 이해관계인, 시민단체 등의 문제 제기가 형사절차로 곧장 연결되면 무혐의 사건까지 장기 수사와 중복 조사에 묶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권 확대가 곧바로 집행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2022년 작성된 대검찰청 내부 검토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권이 절차적 논의 없이 확대될 경우 ▲영장주의 우회 ▲진술거부권 미고지 ▲증거능력 한계 등이 우려된다고 적시했다. 권한만 늘리는 방식으론 적법절차 논란까지 키울 수 있다는 의미다.

AD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절충안은 비교적 분명하다. 담합은 행위 자체의 위법성이 비교적 선명하고, 은밀한 공모 구조 탓에 강제수사와 개인 책임 추궁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공정거래 사건과 구별해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단순 행정 사안은 형사처벌 대상에서 덜어내 기업 부담과 수사 혼선을 줄이고 담합처럼 국민 경제를 직접 흔드는 중대 범죄는 별도 형사 트랙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