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복위 모의는 실패했다. 사육신들은 역적으로 죽었고, 그들의 '남자' 가족들은 몰살당했다. 성삼문의 아버지, 형제들, 어린 아들들도 모두 죽었다. 모의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참여했기에 죽거나 희생당한 사람만 230여명이었다. 그러나 살아서 시대의 잔인함을 견뎌야 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사육신의 아내와 딸들이었고 이들은 노비의 신분이 됐다. 야사에 따르면 성삼문이 형장으로 끌려갈 때 딸 효옥을 보고 "너는 딸이라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때론 죽는 것보다 처절한 삶이 있다.
사육신의 아내와 딸들은 양반 신분으로, 공신들과도 지인이고 친척이었다. 하지만 세조의 공신들은 탐욕스럽게 여자들을 나눠 가졌다. 그다음엔 협박해서 첩으로 삼았다. 세조실록은 몇몇 사육신의 여자들이 공신들의 첩이 됐다며 비웃듯 기록했지만 오히려 그녀들을 그런 지경으로 몰아간 시대야말로 잔인하고 염치없었다. 단종을 몰아낸 것이야말로 반역이 아니었던가? 유교야말로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 충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가?
시대의 모순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말년의 세조가 극심한 병에 걸리자 세자(예종)는 사면령을 내리고 사육신 관련자들과 가족을 풀어주었다. 죽을 때가 되니 죄책감이 생겨난 것일까. 그러나 공신들은 이미 이들이 자기 소유의 첩이거나 노비라며 저항했다. 성삼문의 친구였던 이유기의 딸, 소근소사의 인생도 그렇게 뒤틀렸다. 아버지가 처형된 뒤 소근소사는 황효원의 노비가 됐다. 황효원은 첫 번째 부인이 죽자 소근소사를 첩으로 들였다. 노비였던 소근소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성종 때 마침내 사육신의 가족들이 원래의 양반 신분을 되찾았다. 소근소사가 원래 신분인 양반이 되자 첩이 아닌 부인 자격이 있었고, 무엇보다 자식들도 양반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황효원은 소근소사를 '정식부인'으로 위조했다. 하지만 다른 신하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는데 어처구니없는 이유에서였다. "원수의 딸과는 혼인할 수 없는데 '난신(亂臣·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의 딸을 사랑해 본처로 삼았습니다." 소근소사야말로 가족의 원수와 결혼하고 싶을 리 없을 텐데 말이다. 성종은 못 본 척 넘어가고 싶어했다. 황효원이 성종의 후원자이기도 했고, 원래 소근소사는 양반인데다 왕족의 혈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쐐기를 박은 사람이 있었다. "세상에 난신의 딸을 첩으로 둔 사람이 많은데 모두 허락하시렵니까? 난신의 외손들이 조정에 들어오게 한다면 난적을 토벌한 의의가 없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육신을 밀고했던 김질이었다. 결국 소근소사는 첩의 신분으로 남았다. 비록 그들이 난신이라 말했지만 사람들은 사육신을 존경해왔고, 충신으로 여겨졌으며 끝내 단종도 복위됐다.
그래서 사육신의 후사가 대부분 끊어졌음을 안타까워하는 기록을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아니, 그들은 살아남았다. 기록엔 남지 않았지만 죽기보다 살기를 선택한 여인들이 있었다. 죽어서 충성한 사육신과 살아서 충성한 생육신이 있는 것처럼 비록 부모의 원수와 강제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구차한 삶을 이어갔다 하더라도, 그랬기 때문에 이 세상엔 배신자뿐만이 아닌 충신들의 DNA도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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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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