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과 함께 사라지는 풍경
과거라는 이국으로 떠나는 여행
'효율성'에 밀려난 불편한 공간
2030·외국인 찾는 서울의 속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서울 사진 중에는 골목 사진이 유난히 많다. 경복궁 같은 유명한 관광지나 일상적인 음식점, 가게, 대중교통을 담은 사진도 많지만, 도시 풍경 중에는 골목 사진이 가장 많아 보인다. 서울의 골목길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왜일까.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서울 골목의 역사와 특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역사가 오래된 도시 가운데 골목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 19세기 말 등장한 자동차는 20세기 초 보급이 시작됐다. 따지고 보면 도시 안에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한 역사는 이제 100년 남짓에 불과하다. 그 이전 말을 타는 귀족이나 상류층을 제외한 보통의 사람들은 대체로 걸어 다녔다. 20세기 이전 세계 모든 도시는 도보 중심으로 발전했다. 말 그대로 ‘휴먼 스케일’이었다.
골목은 이러한 도시 풍경 속에서 발전했다. 오래된 도시에 중심 대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한정적이었고 보통은 골목길을 걸어 다녔다. 조선 시대 한양은 남북을 잇는 세종로, 동서를 잇는 종로가 주요 도로였고 나머지 이동 공간은 골목이었다. 19세기 중반 조르주외젠 오스만이 넓은 도로를 설치하기 전 파리 역시 주요 도로가 많지 않았고 도시의 길은 대체로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골목이었다. 스페인의 고도 코르도바는 주요 도로가 거의 없고 도시 전체가 다 골목으로 연결돼 오늘날에는 골목으로 유명한 도시가 됐다. 1868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을 정해 정비한 도시라 주요 도로가 많은 편이었지만, 주요 도로를 제외하고, 보통 주민들이 다니는 길은 거의 다 골목으로 연결됐다.
골목을 떠올리면 넓이와 길이를 포함한 보편적인 장면이 연상되겠지만 골목의 모양은 생각보다 매우 다양했다. 한양의 경우 개천을 따라 형성된 골목은 넓고 길었으며, 다른 골목과도 연결됐다.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그 지역의 주요 도로인 자하문로 상점 뒤편에서 체부동과 누하동까지 이어지는 긴 골목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오늘날의 자하문로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백운동천이라는 개천이었고, 이 골목은 당시 이 지역의 주요한 이동 통로였다. 주요 골목 옆으로는 훨씬 짧고 좁은 골목이 수시로 이어졌고, 다시 더 짧고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다가 막다른 골목과 맞닥뜨리기도 했다. 오늘날 체부동과 누하동에 그때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코르도바 역시 비슷한 골목의 위계가 존재한다. 2023년 처음 가봤을 때 다양한 폭과 길이의 옹기종기한 골목을 걸으며 서촌을 떠올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도시의 주요 이동 통로였던 골목은 20세기에 큰 도전을 직면한 이래 지금도 사라질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한 자동차의 등장과 보급, 그리고 인구의 증가다. 자동차가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서는 넓은 도로가 필요하고, 세워둘 주차 공간도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도시는 주요 도로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건물을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오래된 도시 생태는 큰 영향을 받았다. 백운동천처럼 개천을 덮어 도로를 만든 곳도 많다. 서울은 역사적 도심 지역인 사대문 안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골목이 많았다. 오늘날에도 동네마다 도로로 변한 골목과 개천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가용 말고도 버스, 택시, 운송 트럭 등의 사용이 급증했고, 이를 위해 도로의 확장, 확대가 중요했다.
생활 방식도 덩달아 많이 변했다. 여러 세대가 같이 사는 가족 구성원 가운데 살림은 주로 여성이 맡았다. 여성들은 거의 매일 집 근처 시장이나 식료품 전문 가게 등에서 장을 봤다. 20세기 후반 무렵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살림을 병행하기에는 늘 시간이 부족했고, 자동차 사용은 계속 증가세였다. 편리한 주거 방식의 상징으로 아파트가 급속도로 늘었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골목은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은 좁고 불편하다는 이미지를 형성했다. 서울을 비롯해 세계 많은 도시들마다 골목이 많은 동네는 주민들이 점차 떠나고, 남아 있는 주택들은 관광객을 위한 숙박업소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그랬던 골목이 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골목을 자주 찾아다니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 이들 대부분은 골목에 살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골목은 신기하고 이국적인 장소다. 그들이 골목을 좋아하는 걸까? 그런 감정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살고 있지 않으니 판단하기 어렵다. 인공적으로 지어 올린 아파트 중심의 획일적인 거리에 비해 골목은 다양한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골목에 살아본 적 없는 이들에게 이런 풍경은 낯선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골목에 대해 느끼는 이국성은 낭만주의라고 하기도 어렵고, 향수라고 설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러한 감수성을 누군가는 느낄 수도 있겠으나 골목 사진을 열심히 찍는 연령대가 주로 아파트에서 자란 2030세대라는 점은 낭만성이나 향수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골목에 대해 진정한 낭만을 느끼려면 골목에 대한 이미지를 낭만이라는 감수성과 연동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향수를 느끼려면 머리에 떠올릴 만한 추억이 존재해야 하고, 지난 시절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제돼야 한다.
그럼에도 골목 이미지가 SNS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얼핏 보기에는 낭만적 대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빨간 장미꽃이나 샴페인만큼 분명하게 낭만적인 이미지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향수라는 감정은, 골목이 많은 동네에서 살았다거나 자주 방문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2030세대가 느끼기에는 쉽지 않다.
한국의 2030세대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역시 서울의 골목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들은 한국에 와서 당연히 이국성을 느낀다.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산낙지, 어딘가 어색한 영어 안내문, 한옥 카페, 한복 입고 고궁을 거니는 사진들도 많지만, 이런 분명한 이국성에 비해 서울의 골목은 상대적으로 덜 '신기'하고 덜 '이국적'이면서 또 낯설고 새로운 볼거리다.
지난 15년 동안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주최로 서울 답사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다. 오래된 동네를 걷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국인들은 대부분 골목을 흥미롭게 바라봤고,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다. 대도시 서울에서 이런 골목의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영국 소설가 L.P. 하틀리가 1953년에 출간한 '더 고비트윈'은 "과거는 이국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골목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누군가를, 그들이 느끼는 이국성만을 기준으로 나눈다면 그들은 모두 다 골목길의 '외국인'이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에게 그 이국성은 신비한 감각과 함께 시각적이고 지적인 자극을 주기도 한다. 분주한 일상을 떠나 이국성 짙은 공간을 산책하는 것은 마치 영화를 볼 때처럼 일종의 현실에서 벗어나는 수단에 가깝다.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서울의 골목은 점점 더 없어질 것이다. 그럴수록 남아 있는 골목길은 더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일상의 풍경과는 다른,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은 골목의 이국성을 더 많이 찾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골목에서 살아본 세대가 줄어들수록 골목을 즐기는 연령대는 더 넓어질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그런 이국성에 더해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될 날도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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