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맥]매년 반복되는 추경, 무엇을 위한 지출인가
AD
원본보기 아이콘

정부는 작년 31조8000억원에 이어 올해에도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했다. 이번 추경에는 고유가에 따른 산업 피해 지원이나 취약계층을 향한 표적 지원 등 타당성을 갖춘 항목도 담겨 있다. 다만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결이 다르다. 중동전쟁발 3고(고유가·고환율·고물가) 부담을 완화한다는 명분으로 4조8000억원을 들여 국민 70%인 3200만명에게 1인당 10만~60만원을 차등 지급하는 대규모 현금성 이전지출이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이후 반복되고 있는 광범위한 현금 이전이 자칫 일상화될까 우려스럽다. '부담을 덜었다'는 환호 뒤에 정작 묻지 않은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이 지출은 무엇을 목표로 하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정부는 "신규 국채 발행 없이 초과세수와 기금으로 충당해 국가부채는 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비껴간 항변이다. 경제학의 '리카도의 대등정리'에 따르면, 일정한 정부지출을 세금으로 조달하든 국채발행으로 조달하든 합리적 경제주체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는다. 합리적 소비자가 오늘의 감세나 이전소득을 미래의 조세증가로 인식할 경우 부채로 조달된 보조금의 경기부양 효과 또한 제한적이다. 초과세수와 기금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그 흑자는 본래 국가채무를 상환하는 데 쓰일 수 있던 자원이며 기금 역시 미래의 어떤 용도를 위해 적립된 재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핵심은 재원조달방식의 차이가 합리적 주체의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지, 정부지출 자체에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자. 맞벌이 신혼부부가 퇴근한 어느 날, 배우자가 고급 스포츠카를 덜컥 사 왔다. 이때 "내 집 마련을 위해 저축 중인데 지금 이 차를 살 상황인가"라고 묻는 것과, "적금을 해약해서 샀는가, 할부로 샀는가"라고 묻는 것 중 무엇이 합리적인가. 더 원초적인 질문은 분명 전자다. 재정적자의 크기나 조달방식보다, 그 지출이 정말 가치 있는가가 핵심이다.


한국의 재정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평가받지만, 이는 공짜가 아니다. 엄격한 재정준칙 아래 균형재정을 지켜온 과거 세대의 절제가 오늘의 재정 여력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여력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10년 전 35% 안팎이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이미 50% 수준이며, 20년 뒤에는 10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비율이 선진국보다 낮다며 적자재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청구서를 떠넘기는 일이다. 적자재정의 고전적 구축효과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채무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재정승수 자체가 하락한다는 연구도 있다. 결국 국채로 조달한 재원이 잠재성장률과 미래 세입 기반을 넓히는 투자로 이어져 GDP라는 분모를 키워야 부채비율은 안정된다. 4조8000억원의 일회성 현금 이전은 그러한 분모 확장형 지출과는 거리가 멀다.

시점도 짚어야 한다. 지난해 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경기침체 국면에서 추경의 소비쿠폰은 납득할 만한 부양책이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7%라는 깜짝 실적을 기록했고, AI발 반도체 수요 급증 속에 주식시장도 활황이다. 경기가 식어가는 국면에 쓰여야 할 재정 카드를 이미 회복 신호가 보이는 시점에 다시 꺼내 드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3200만 명에 대한 현금성 지원은 복지정책이라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고, 경기부양이라기에는 시점이 어긋난다. 한시적 대응이 관성화되는 순간, 그것은 위기 대응이 아니라 재정의 경직화다.


어떻게 조달하든 그 부담은 결국 누군가에게 돌아온다. 합리적 경제주체라면 묻는다. 우리는 지금, 정말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차를 사고 있는가.

AD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금융학회장)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