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강박에 붙들린 삶에서 회복의 삶으로
셰익스피어와 프로이트가 읽어낸 '두 번째 기회'
사람들은 흔히 삶을 한 번만 산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 대부분은 인생을 적어도 두 번은 살아간다. 물리적·육체적 삶은 확실히 한 번뿐이다. 그러나 정신적·사회적인 삶은 다르다. 삶의 길은 평탄하지 않기에 우리 앞에는 시험에 떨어지고, 실연을 당하고, 병이 들고, 퇴직하는 등 어제의 삶을 그저 반복할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다가온다. 그럴 때 담을 넘든, 벽을 부수든, 되돌아 옆길로 접어들든, 우리는 좌절한 인생을 수정하고 실패한 삶을 고쳐서 다시 살 수밖에 없다. 하나의 삶이 그치고 다른 삶이 이어지는 일이 분명히 있다.
문제는 삶을 고쳐 쓸 수 없다고 믿는 무능이다. 저지른 실수를 돌이킬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사과하지 못한다. 실패를 이겨낼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이들은 과거에 붙잡혀 있다. 그때로 되돌아가서 옛날의 나를 정확히, 그대로 복원하려고 애쓴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어게인'을 외치는 것을 '반복 강박'이라고 불렀다. 인생을 고쳐 쓸 힘을 잃었기에 이런 이들은 자기 안에서 좋았던 시절을 한없이 되풀이한다. 그들은 낡은 삶에 고착돼 있다.
『셰익스피어와 프로이트』(에이도스)에 따르면, 지나간 일, 저지른 실수, 일어난 실패를 고쳐 쓰지 못하는 무능력이 인간 삶을 비극으로 이끈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 연구의 세계적 대가 스티븐 그린블랫 하버드대 교수와 '정신분석의 시인'으로 불리는 애덤 필립스가 함께 썼다. 두 사람은 '두 번째 기회'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시대와 영역을 건너뛰어 셰익스피어와 프로이트의 대화를 시도한다.
두 번째 기회는 종교가 전하는 이야기, 문학이 창조한 이야기, 정신분석이 다루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매력 있고 사랑받는 주제다. 그것은 좌절한 뒤 일어서는 것, 잃어버린 후 회복하는 것, 놓친 걸 되찾는 이야기로, 인간 삶의 조건을 환기한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므로, 상실과 몰락 속에서 후회의 고통을 견뎌내고 회복을 꿈꾸는 순간을 피할 수 없는 까닭이다.
『십이야』 등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극은 가족과 사랑이라는 인생의 첫 번째 기회를 어떻게 잃지 않고 지켜낼 것인지에 집중한다. 낙관과 행운이 이 세계를 지배한다. 위기를 맞은 인물들은 큰 고민이나 별다른 고통 없이도 본래 손에 쥔 걸 모두 돌려받는다. 이는 즐거운 꿈이자 환상이고, 철부지들의 이야기다. 회복은 시간을 되감는 기적이 아니다. 잃은 건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건 비극에 굴복하느냐, 손상된 삶을 고쳐 쓰느냐 하는 것뿐이다.
이후 셰익스피어는 비극에 집중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오셀로』 등에서 인물들은 좋았던 옛 시절에 집착하다, 분노와 절망에 빠져서 회복의 기회를 놓치고 곤경 속으로 침몰한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셰익스피어는 인생엔 두 번째 기회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걸작 희비극 『겨울 이야기』는 레온테스라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근거 없는 질투로 인해 아내를 잃고 딸을 내버리며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레온테스는 열여섯 해에 걸친 후회와 자책을 거쳐, 아내와 딸의 용서 속에 간신히 행복을 되찾는다. 이로써 셰익스피어는 인간 안에는 돌이킬 수 없이 상실한 듯 보였던 것을 회복할 힘이 있음을 그려낸다.
레온테스에게 고통의 나날은 자기 안의 모순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변화를 인정하고 낡은 과거를 버리는 성숙의 시간이다. 이처럼 자신이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님을, 세상은 자기 욕망과 질투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좋은 삶이란 타자와의 화해와 타협 속에서 가능함을 수용하는 사람만이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다. 레온테스의 행복은 자신이 괴롭혔던 아내와 딸의 용서 속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두 번째 기회를 잡고 삶을 고쳐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기회를 거부한 채 영영 '어게인'에 머무른다. 일어난 손실을 되찾지도, 벌어진 갈등을 해결하지도 못하는 삶은 얼마나 끔찍한가. 그 삶엔 치유도, 희망도 없다. 극복할 수 없는 죄책감, 돌이킬 수 없는 수치심에 시달리는 삶이 무한정 이어진다. 그는 극심한 자기 비하와 치명적 자기 배신을 영원히 반복한다.
비극은 무력함의 이야기, 낡은 자아에 고착되어 다른 자아를 상상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빚는 이야기다. 맥베스는 망상 속으로, 리어왕은 오만 속으로, 햄릿은 우유부단 속으로 도피할 뿐 돌이켜 자기 삶을 돌보지 않는다. 그들은 무너진 세계 속에서 과거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차라리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변화를 충고하는 이들에게 원한과 복수심을 품는다. 스스로 자기 행복을 가로막는 이런 이들은 모든 게 파멸한 후에야 간신히 '너무 늦었음'을 깨달을 뿐이다.
진료실에서 프로이트는 자기 파괴 욕구, 곧 죽음 충동에 빠져 첫 번째 삶을 무한히 반복하는 사람들을 돕고자 했다. 그는 자기의 고통에 갇힌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치유의 이야기로 고쳐 쓰려 했다. 그가 이해하기에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 탓에 한없는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돌이켜 자신을 이해하고, 인생 이야기를 고쳐 씀으로써 좌절한 과거, 불만족한 현재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로써 그는 "두 번째 기회에 관한 최고의 해석자"가 되었다.
그에 따르면, 두 번째 기회를 얻는 데 필요한 건 기억이다. "전망은 회고에서 온다." 레온테스와 마찬가지로, 불안과 강박에 빠진 이들은 과거를 돌아보고 살피면서 자기 실패를 직시하고 상처를 인정하며 트라우마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퇴행 속에서 진전을, 강박 속에서 기쁨을, 절망 속에서 갱생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두 번째 기회는 완벽한 복구일 수 없다. 레온테스가 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아내 얼굴엔 주름이 생기고 태어난 딸은 성숙했다. 행복은 '어게인'에 존재하지 않는다. 회복은 흉터와 주름을 끌어안고 다른 삶을 사는 일이다. 변화와 구원을 믿고 삶의 이야기를 고쳐 쓰는 사람, 좋았던 옛날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내기를 거는 사람만이 두 번째 기회를 잡아채서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와 프로이트는 이 엄연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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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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