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망 좁혀오면 조직적 증거인멸
공정위 '임의조사'로는 추적 한계
검찰, 두달 간 압수수색·포렌식
전분당 담합 사건 규모 실체 규명
'강제수사'로 확보한 결정적 증거
기업들 과징금 취소 소송전 대응

"공정거래위원회(조사)에서는 안 불 수 있을 것 같은데, 검찰 가면 안 불 수가 없다."


10조원대 가격 짬짜미를 벌인 전분당 업계 임원들의 통화 녹취록에는 행정기관과 검찰 조사의 차이가 고스란히 담겼다. 최근 검찰이 수사한 '전분당 담합 사건'은 공정거래 범죄에서 보완수사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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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전속고발권에 따라 이뤄지는 고발장 송부는 형사사건의 시작이다. 그간 검찰은 공정위가 넘긴 사건을 보완수사해 개인 행위자를 특정하고, 윗선의 의사결정 라인을 복원하며 추가 물증을 확보해 형사사건을 완성해 왔다. 공정위가 법인 위법 행위를 고발하더라도 실제 형사재판에서 책임을 묻기 위해선 누가 결정했고, 어디까지 보고받았는지를 다시 밝혀야 한다. 그러나 중대범죄수사청 출범과 맞물려 검찰의 보완수사 기능 축소 혹은 폐지가 논의되면서 공정거래 사건의 '수사 완결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임의조사 한계 넘은 강제수사

공정거래 범죄는 기업 내 다수가 텔레그램이나 은어를 쓰며 점조직처럼 은밀하게 가담한다. 실제 이번 수사에서 기업들은 '일타강사'처럼 화이트보드에 인상액을 적고 모의하거나, 담합 공문 발송 '인증샷'을 찍어 감시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파쇄기에 증거를 갈아 넣고 자체 포렌식으로 기록을 지우는 등 조직적 증거 인멸도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상대방 동의를 전제로 하는 공정위 '임의조사'로는 이런 조직적 은폐를 추적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작정하고 증거를 파기하거나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면 이를 강제수사처럼 즉각 확보하기는 어렵다. 공정거래 사건 전문 A변호사는 "공정위가 시장 구조와 경쟁 제한성 판단에 강점이 있다면, 검찰은 개인 행위자와 윗선 책임, 고의성을 입증해 형사사건 뼈대를 세우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고발장만으로는 행정사건은 몰라도 형사재판까지 견딜 구조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공정위 출신의 B변호사도 "공정위는 시장지위와 경쟁상황 위주로 위법을 가리지만, 형사사건은 개인의 관여와 보고 체계까지 특정해야 한다"며 두 작업은 확인 포인트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분당 사건에서 당초 공정위는 담합 규모를 약 6조2000억원대로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두 달간의 압수수색과 포렌식을 통해 은닉된 내부 이메일을 찾아냈고, 뿔뿔이 흩어진 거래 내역을 묶어 최종 10조1000억원대라는 역대 식료품 담합 최대 규모 실체를 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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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수사 빠지면 행정소송 휘청

더 큰 문제는 보완수사 공백이 형사 처벌 실패로 끝나지 않고 국가 행정집행 실효성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이 강제수사로 확보한 관련자 진술 조서와 복원된 물증은 향후 기업들이 대형 로펌을 앞세워 제기하는 행정소송에서 국가 측의 결정적 방어막으로 작용한다.


기업들은 수백억, 수천억원대 과징금 철퇴를 맞으면 대형 로펌을 선임해 과징금 취소 소송전에 돌입한다. 이때 강제수사로 확보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면 치열한 법리 공방에서 기업 측 논리를 방어하기 어려워진다. 대형 로펌의 C변호사는 "수사기관은 압수수색으로 단번에 윗선을 타격하는 효율성이 있다"며 "고발장만 던져놓고 보완수사가 멈춘다면 향후 행정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해 과징금 처분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각 기관의 목적과 수사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 전직 공정위 법무보좌관은 "공정위는 막대한 과징금 부과를 위해 패소 위험이 없도록 원 단위까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며 "반면 수사기관은 징역과 벌금이 목적이라 복잡한 경제 분석보다는 관련자들을 묶어 '통자백'을 받아내는 등 다소 거칠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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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의 강제력이 결합돼야만 지능화하는 카르텔을 온전히 억제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수사권이 중수청 등으로 이동하든, 공정위 고발 이후 형사사건의 빈틈을 메울 정밀한 보완수사 체계는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B변호사는 "공정위와 검찰은 어느 한쪽이 빠지면 굴러가지 않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며 "이 맞물려 돌아가던 역할 분담 체계를 억지로 떼어놓는다면 결국 조 단위 카르텔에 대응할 국가적 수사 역량만 후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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