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남을 걱정하는 나…자기구원의 길
타인의 불행에 웃는 '샤덴프로이데'
자기혐오에서 시작, 불안·고립으로
존중의 경험이 창조적 관계로 발전

[남산길산책]나는 파괴적인 인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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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인문학자 야스토미 아유무는 자신의 저서 '단단한 삶'에서 '파괴적인 인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타인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준비한 분류표의 어딘가에 적당히 배치해서 이해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인간관계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이에 따르면, 파괴적인 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오로지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강요하며 타인의 인격을 파괴한다.

화제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는 스스로가 파괴적인 인간이라고 의심하는 주인공 '황동만(구교환 분)'이 나온다. 그는 20여년간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번번이 실패해 피해의식이 가득하고 불안정한 인간이 돼 있다. 오랜 친구들이 곁에 있지만, 친구의 성공에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들의 실패, 사고, 절망에 기뻐하는 인간이 돼 있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컷.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컷.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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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에는 타인의 절망에 기뻐하는 감정을 뜻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황동만은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며 스스로를 파괴적인 인간이라고 일컫는다. 그가 파괴적인 인간인 건, 남들의 절망에 기뻐하면서 주변 친구들을 괴롭히며 자기 말을 들어줄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야스토미는 이러한 파괴적인 태도가 '자기애'와 관련돼 있다고 본다. 자기애는 언뜻 자기를 사랑하는 일 같지만, 실은 '자기혐오'에서 시작된다. 자기혐오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다. 황동만은 스스로를 인정할 수도, 존중할 수도 없다. 그래서 스스로를 파괴하려고 일부러 상처도 준다. 자기혐오로부터 시작된 자기애는 불안으로 이어지고 고립을 만든다.


그런데 불안과 고립에 파묻혀 있던 황동민이 어느 날 "나는 파괴적인 인간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기뻐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타인을 걱정하면서다. 그는 작중에서 친분을 맺게 된 변은아(고윤정 분) PD가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장면을 목격하고 달려간다. 그녀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자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문득 놀란다. 자신이 타인의 불행에 기뻐만 하는 파괴적인 인간이 아니라, 타인을 걱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야스토미는 자기애의 대립에 '자애'를 놓고 이는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 상태"라고 말한다. 만약 진짜 친구를 사귀려면, 먼저 자신을 싫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파괴적인 태도가 아니라 창조적인 태도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이른바 '창조적인 인간'이다. 그는 이를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면서 관계 맺는 사람'이라고 했다.


황동만은 변은아를 만나는 순간만큼은 창조적인 인간이 된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돼간다. 변은아 역시 항상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다가 황동만을 만나면서 조금 더 세상에 당당한 인간이 돼 간다. 그들은 서로의 태도를 창조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야스토미는 말한다. "자기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구와 함께 용기가 필요하다." 그들은 세상에 맞서며 스스로를 존중할 용기를 배워간다. 고립은 혼자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존중받는 경험,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는 용기를 통해 조금씩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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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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