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서로가 1등을 외칠 때, 소비자는 길을 잃는다
'투자하는 연금' 시대…보험사의 조급한 추격
비교 기준 바뀌면 1등도 바뀐다
'수익률 1위'보다 중요한 질문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수익률 업계 1위입니다."(A보험사)
"비교 기준을 달리하면 저희가 1위입니다."(B보험사)
최근 퇴직연금 경쟁력을 앞세우는 보험사들이 서로 1등이라고 우기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금세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보험사들이 서로 1등을 외치는 풍경은 거대한 노후자금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영향이 크다. 국내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은 올해 1분기 기준 5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은행과 증권사가 주식 투자 열풍을 타고 상장지수펀드(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을 앞세워 빠르게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보험을 포함한 금융사들 입장에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시장이 된 셈이다.
보험사들은 뒤늦게 DC형·개인형퇴직연금(IRP) 시장에서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때 안정성을 내세워 확정급여(DB)형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머물며 상대적으로 약했던 리테일 접점을 보완하기 위해 DC·IRP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채널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투자 상품 확대는 물론, 영업 조직을 세분화하고 고객별 성향에 맞춘 상담 기능을 강화하는 등 '관리형 연금'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분위기다.
문제는 경쟁이 격화하면서 각사가 각자 유리한 기준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적립금 규모 등 비교 대상을 정하는 기준을 달리한 채 각자 '업계 최고' 수익률을 내세운다. 같은 DC형 상품을 두고 서로 다른 1위가 동시에 등장하는 이유다.
'1등'이라는 숫자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돕기 위한 지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준이 제각각이면 이 지표는 오히려 판단을 흐린다. 소비자는 "그래서 무엇을 믿어야 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
서로 다른 잣대 위에 '1위'라는 같은 언어를 쓰면 그 표현은 설명이 아니라 마케팅이 된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1등인가'가 아니라 '왜 이 결과가 나왔는가'다.
어떤 기준으로 측정됐고 그것이 내 안정적인 노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그 숫자는 정보가 아니라 혼란에 가깝다.
최근 국내 생명보험 업계 선두인 삼성생명은 DB형 적립금 감소 여파로 퇴직연금 적립금 1위 자리를 20년 만에 신한은행에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사들이 외치는 '1등'은 시장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초조함만 내비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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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이 보여줘야 할 본질은 '퇴직연금 수익률이 1등'이라는 홍보문구가 아니다. 갈수록 커지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고객의 노후자산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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