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 뷰포인트]'혁명수비대 국가'의 탄생…美 오판에 흔들리는 중동질서
이란, 열강에 영토·주권 침해받은 역사
항복이 곧 제국주의 지배로 회귀 의미
게릴라전 구사, 버티는 생존전략 펼쳐
지도부 참수에도 이란 전쟁시스템 작동
온건파 빈자리, IRGC 강경파들이 채워
국제법 아닌 정글의 법칙이 지배
서구 사회와 외부 관찰자들은 흔히 이란을 바라볼 때 '신정정치'라는 좁은 프레임에 갇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이란이 가진 오래된 '민족 국가'로서의 실체와 그들이 수십 년간 다져온 확고한 국가 안보 관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란 지도자들에게 있어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종교적 법도를 세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란에 진정한 독립을 부여했다는 점에 있다. 호메이니와 하메네이는 오직 이슬람 혁명이라는 도구만이 이란을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주적인 주권을 찾아줄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이란의 혁명 세력 안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나 자유 민주주의자 등 다양한 분파가 섞여 있었으나,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정신은 지난 2세기 동안 겪어온 외세의 굴욕을 씻어내야 한다는 강렬한 역사적 원한이었다. 그들에게 미국은 단순한 외교적 경쟁자가 아니라 이란의 독립을 위협하는 제국주의의 상징이며, 이슬람 공화국은 그 독립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하나의 거대한 요새와도 같다.
이란의 국가 안보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스스로를 상처 입은 국가이자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섬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1500년대 사파비 왕조 이후 이란은 오스만 제국의 팽창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 시아파를 전략적으로 채택했다. 그런데 19세기 내내 러시아와 영국 등 열강에 의해 영토를 유린당하고 주권을 침해받는 수모를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연합군에 의해 강점당하고 식량까지 수탈당했던 아픈 기억이 이들의 뼈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란은 자신들이 중동 내에서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소수자이며, 결코 변치 않을 우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이란 지도부에 있어 국가 안보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실존적인 투쟁이다. 이들은 지난 200년의 역사 중 오직 이슬람 공화국만이 이란에 진정한 주권을 주었다고 확신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치르는 경제적 대가나 국제적 고립은 감수해야 할 숙명으로 여긴다. 종교의 외피 아래 숨겨진 주권과 독립을 향한 그들의 집요한 집착을 이해하는 것만이, 꼬인 실타래를 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서구의 눈에는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란의 입장에서는 항복이 곧 제국주의적 지배로의 회귀를 의미하기에, 오히려 버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 된다. 이들은 정규군 간의 대결에서는 승산이 없음을 알고,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한 비대칭 전술이나 호르무즈 해협을 인질로 잡는 방식의 게릴라전을 구사하며, 상대방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전쟁을 치르면서 이란은 단순히 군부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를 넘어, 혁명수비대(IRGC)가 곧 국가 자체가 된 'IRGC 국가'로 탈바꿈했다. 이는 종교적 언어로 포장됐던 기존의 통치 체제가 냉혹한 군사 논리와 안보 우선주의에 의해 완전히 잠식됐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정점에는 새로운 최고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등장이 있다. 그는 팔레비 왕정 시절 감옥에서 고초를 겪으며 사상적 기반을 다졌던 아버지 알리 하메네이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니고 있다. 모즈타바는 청년 시절 이란·이라크 전쟁에 자원해 전선을 누볐던 참전 용사이며, 이후 30년 가까이 혁명수비대 내부에 깊숙이 몸담으며 정보와 인사권을 막후에서 조정해온 인물이다. 과거 알리 하메네이가 '핵무기 금지 파트와(Fatwa)'를 발표하거나 미국의 공격에 상징적인 수준으로 대응하며 나름의 전략적 신중함을 유지했다면, 모즈타바와 그를 지지하는 새로운 세대는 이러한 절제를 오히려 적의 침략을 부추긴 유약한 실수로 규정한다. 이제 이란의 지도부는 서구의 압박에 맞서 핵무장과 공격적 대응을 서슴지 않겠다는 더욱 호전적인 군사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가장 큰 오판은 이란의 권력 구조를 과거 팔레비 왕정 시절과 동일하게 보았다는 점이다. 1979년 혁명 당시 팔레비 왕조의 체제는 전형적인 1인 독재의 피라미드형 구조였다. 당시 왕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마비되자 군을 포함한 국가 시스템 전체가 동시에 붕괴했다. 반면 현재의 이슬람 공화국은 대중적 인기보다 생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설계된 체제다. 권위는 최고 지도자에게 집중된 듯 보이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과 운영 권한은 수많은 마디로 분산돼 있다. 이는 상명하복식 피라미드가 아닌 모자이크식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각 조직이 독자적인 운영 권한을 가지고 있어, 설령 최고 지도자나 미사일 부대 사령관이 사살되더라도 전체 시스템은 중단 없이 작동한다. 실제로 이번 전쟁 중 군 지휘관들이 동시에 사살됐음에도 이란의 전쟁 수행 능력에 차질이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지도부 참수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국가 기반 시설을 타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통치 능력을 마비시켜 굴복시키겠다는 의도였으나, 이란은 이 또한 예측하고 전력망 등 필수 인프라를 전 국토에 분산시켜 복원력을 높였다. 현재 이란은 정규군이 국가를 방어하는 전형적인 국가의 형태가 아니라, 국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격대처럼 움직이는 ‘게릴라 국가’로 진화했다. 이들은 공중에서의 압도적인 화력을 피하며 비대칭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지상군 투입 없이는 결코 끝낼 수 없는 비정한 소모전을 강요하고 있다.
참수 작전이 가져온 또 다른 치명적인 부작용은 이란 내부에 존재하던 협상 가능한 온건파와 실용주의자들을 완전히 소멸시켰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국제적 감각을 갖춘 알리 라리자니 같은 인물들을 제거하거나 무력화했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혁명수비대 출신의 강경파들이다. 현재 이란의 의사결정 테이블은 대화나 타협보다는 ‘눈에는 눈’ 식의 보복을 신봉하는 매파들이 장악했다. 트럼프가 기대했던 ‘말 잘 듣는 지도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미국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가장 위험하고 과격한 집단이 이란의 운전대를 잡게 된 것이다. 결국 ‘참수 작전’은 체제 붕괴라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적의 회복 탄력성을 강화하고 대화의 창구를 완전히 닫아버리는 최악의 결과만을 초래했다.
이번 전쟁은 중동 경제에도 현상 유지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세계 각국은 원유와 천연가스 등 필수 자원의 수급을 위해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를 낮추려 할 것이며, 이는 중동의 글로벌 무역 허브 지위에도 도전이 될 것이다. 이번 전쟁은 중동 내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구심을 던졌다. 이란의 공격으로 17개의 미군 기지가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 미군 기지의 존재가 억제력이 되기보다 오히려 공격을 끌어들이는 표적이 됐다는 역설이 명백해졌다. 중동 지역 안보는 다극화 체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파키스탄과 방위 조약을 체결하거나 카타르가 파키스탄군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은 미국 외의 대안적 안보 파트너를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미국의 위상은 하락한 반면, 이란과 걸프 국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영향력을 키운 중국이 이번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IRGC 국가' 이란의 탄생은 우리가 알던 중동의 질서가 끝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정 정치의 합리적 통제마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제복 입은 지도자들은, 국제법이 아닌 정글의 법칙을 새로운 안보 문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47년간의 고립과 전쟁이 잉태한 이 생존 시스템은 이제 중동을 넘어 전 세계를 예측 불가능한 위험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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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 변호사·달러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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