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학생]②
고립·우울·생활고…벼랑 끝 내몰린 대학생
명문대도 막지 못한 구조적 위기
서울대,5년 새 자살 위험 조기 개입 70%↑

"죽어야 하나." "미치겠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 재학 중인 송모씨(23)는 "시험 때만 되면 친구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라고 했다. 대학은 쉼표가 아니라 또 다른 출발선이었다. 복수전공, 대외활동, 공모전, 취업 준비까지 동시에 요구되는 환경 속에서 그는 "하나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고 했다.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불안은 극대화됐지만 공부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휴대폰 중독에 빠진 것은 이 시기다.


남들보다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부담은 휴학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송씨는 "동기 10명 중 9명이 휴학했다"고 전했다. 정작 송씨는 휴학도 두려웠다. 그는 "면접 볼 때 '휴학하고 1년 동안 뭐했나'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휴학도 못하겠다"고 했다.

힘들 때 기댈 곳은 없었다. 코로나 시기에 대학에 들어온 송씨는 새내기 배움터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학과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됐다. 가장 외로운 순간은 아플 때였다. 자취방에서 혼자 아파할 때 누구도 그의 상태를 알기 어려웠다. 체력 저하로 쓰려졌던 날, 구급차를 부른 건 송씨 본인이었다.


"저 좀 데려가 주세요."


[단독]벼랑에 내몰리며…서울대 20년 간 43명 숨져, 무너진 청춘
AD
원본보기 아이콘

대학은 '각자도생'…생존경쟁 내몰려

올 2월 수도권 대학을 졸업한 박모씨(25)도 같은 외침을 내뱉고 있었다. 2020년에 시작한 대학 생활은 기대와 달랐다. 코로나 시기에 맞물리면서 오리엔테이션(OT)은커녕 선배들과 교류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휴학, 편입까지 겹치면서 소속감은 더 희미해졌다.


박씨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3학년이었다. 전공 공부가 심화하면서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동시에 취업에 대한 압박이 본격적으로 다가왔다. "한 학기 동안 뭘 하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결정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동기들은 '쉬었음' 청년이 되지 않기 위해 각종 스펙 쌓기에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졸업 후 바로 취업이 되는 경우는 체감상 10명 중 1명에 그쳤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이 늘 따라붙었다. 감정 기복도 커졌다. 갑자기 화가 났다가 우울해졌다.


생활 역시 여유롭지 않았다. 한 학기에 360만원 수준인 등록금, 연간 400만원인 기숙사비를 제외하고도 매달 생활비로 최소 5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필요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비용이니까, 점점 사람을 덜 만나게 됐다"고 했다. 대학은 충분한 안전망이 되지 못했다. 그는 "방치된 성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박씨는 "청춘이라서 아픈 게 아니라, 계속 아플 것 같아서 더 불안한 것"이라며 "20대 중후반에 고립·은둔이 시작되는데, 이 시기에 예방적인 개입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한 대학교의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1~2인용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다. 일부 외국인 유학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휴대폰을 보거나 이어폰을 꽂고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 학생들은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이 같은 광경은 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0일, 서울 한 대학교의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1~2인용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다. 일부 외국인 유학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휴대폰을 보거나 이어폰을 꽂고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 학생들은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이 같은 광경은 흔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본보기 아이콘

"죽고 싶다"는 서울대생, 5년 새 50% 증가

대학생들의 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성취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서울대생의 자살 통계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일 강경숙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대가 자료를 집계한 2006년부터 올해까지 20년간 학부·대학원생 자살 건수는 총 43건에 달했다. 사안의 특성상 유족이 사인 밝히기를 거부하는 경우 등도 있어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 자살이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대학생 위기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위기 신호는 상담 수요 증가로도 드러난다. 서울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자살예방상담전화 '스누콜' 이용 건수는 2020년 914건에서 지난해 1374건으로 5년 새 50.3% 증가했다. 자살 위험성이 있는 학생에 대해 조기 개입한 사례 역시 같은 기간 36건에서 61건으로 69.4% 늘었다. 학내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학생들도 꾸준히 증가해 전체 심리 상담 신청 건수는 2020년 598건에서 지난해 928건으로 55.2% 많아졌고, 심리검사 건수는 1748건에서 2766건으로 58.2% 늘었다.


상담 내용을 보면 정서·진로·관계가 동시에 악화되는 복합적 위기 양상을 보였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서 문제다. 전체 4145건 중 정서 문제가 39.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증가율은 2020년 227건에서 지난해 356건으로 57% 늘어 전체 상담 증가를 주도했다. 이어 학업·진로(16.6%), 대인관계(12.4%), 가정(8.1%) 문제 때문에 상담을 요청했다.


특히 같은 기간 증가율을 보면 대인관계 상담이 82.1%, 연애·성 관련 상담은 124.0%, 실존 문제는 320.0% 각각 증가했다. 가정 문제도 110.5% 늘었다. 대학생들이 단순히 공부와 취업 문제를 넘어 인간관계와 소속감, 일상 적응까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독]벼랑에 내몰리며…서울대 20년 간 43명 숨져, 무너진 청춘 원본보기 아이콘

성인이라 방치된 청년'…대학생 위기, 정부 '통계'조차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위험 신호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이다.


대학생은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진로·경제·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전환기 집단'에 가깝다. 그럼에도 교육부와 경찰청 등 관계 기관에는 대학생 정신건강이나 자살 관련 통계조차 제대로 축적돼 있지 않다. 대학 내 사건이 발생하면 평판과 이미지 등을 이유로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음지의 문제'로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지가 교육부와 경찰청 등에 '대학생 자살 등을 포함한 마음건강 문제'와 관련해 통계자료를 요청했지만, 이들 기관 모두 "대학생만 별도로 통계 내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생 위기를 더 이상 개인의 취약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대학과 정부가 함께 대응해야 할 구조적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담센터 인력과 예산 확충은 물론 위기 학생을 조기에 발견해 연계하는 체계, 휴학생·중도탈락 학생까지 포함한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D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