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말 바꾼 원료돈지 업체들, 국민 식탁 위협한다
유통기준 어긴 채 원료돈지 식용으로 판매
보도 직후 표시·광고 수정하며 흔적 지워
경찰, 집중수사 검토…"국민 건강권 위협"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식용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원료돈지(豚脂·돼지기름)를 조리용 식재료로 유통·판매한 업체들에 대한 본지 보도 이후, 경찰은 수사에 착수하며 이같이 밝혔다. 서울·경북·대구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업체들을 조사하기 위해 사건은 각 지역 관할 경찰서로 이송될 예정이다. 집중수사도 검토한다. 관련 진정을 최초 접수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 효율성을 고려해 한 관서에서 사건들을 모아 진행할 수 있는 집중수사가 필요하다고 건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식용돈지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여야 할 원료돈지가 식품의약품안전처 산가 기준을 어긴 채 시중에 유통됐다고 본지는 보도했다. 산가는 기름의 신선도와 산패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업체들은 원료돈지를 프리미엄 브랜드 라드유처럼 포장해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볶음·부침 요리에 활용하라고 적극적으로 안내했다. 백화점 명품관에 납품해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유통됐다.
보도 직후 업체들은 표시를 수정하거나 판매를 중단하는 등 흔적 지우기에 급급했다. 취재 당시 '문제없다'고 자신했던 태도가 뒤바뀐 것이다. 공급업체 1곳과 판매업체 1곳은 표시·광고를 수정했고, 2곳은 아예 판매를 중단했다. 한 판매업체는 공급처를 바꿔 '우리 업체는 원료돈지가 아닌 식용돈지를 판매한다'고 말을 바꿨다. 먹어도 괜찮다는 기존 설명을 믿고 구매했던 소비자는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안전 기준을 벗어난 제품을 계속 섭취할 가능성이 크다.
기준 위반을 인지하고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도 있다. 한 업체는 기자에게 "화학적 정제 과정을 덜 거쳤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하고 맛있다"고 주장했다. 정제 공정을 거칠 경우 향미가 떨어진다는 논리로 정상 업체까지 폄훼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안전성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식품은 엄격한 안전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식품 안전성은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으면 유통 과정에서 책임 소재도 불명확해진다. 특히 기름류는 산패가 진행되더라도 일반인이 냄새나 색만으로 이상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안전기준은 애초 검증되지 않은 불량식품이 국민의 식탁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셈이다.
법이 정한 기준은 권고가 아니라 의무다. 편의를 이유로 기준을 무시하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맛과 이윤이란 핑계가 국민의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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