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이후
서울시 vs 하림 인허가 핑퐁
용적률·교통 문제로 충돌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 땅'으로 꼽히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도시첨단물류단지' 부지는 한국 부동산 개발의 그늘을 보여준 비운의 개발사(史)다. 1980년대 용산시외버스터미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화물 기능이 양재동으로 옮겨온 뒤, 1989년부터 화물터미널로 사용됐다. 이후 운영사인 진로그룹이 부도를 맞으면서 부지는 법원 경매에 넘어갔고, 2004년 시행사 파이시티가 이를 낙찰받으며 개발이 추진됐다.


파이시티는 2006년까지 부지 매입을 마무리하고 대형 복합유통시설 개발에 나섰다. 지하 6층~지상 35층, 연면적 75만㎡ 규모의 초대형 사업으로 총사업비만 3조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사업은 출발부터 흔들렸다. 인허가 절차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다. 그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부동산 경기는 급격히 식었고, 사업 여건은 악화됐다.

이명박 정부 실세 연루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결국 파이시티가 일으킨 1조4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발목을 잡았다. 착공이 늦어질수록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지급보증을 선 시공사들이 먼저 무너졌다. 2010년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이 잇따라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공사는 사실상 멈춰 섰다.


과거 개발 추진 당시의 서울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터 파이시티 부지 조감도 (사진=아시아경제 DB)

과거 개발 추진 당시의 서울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터 파이시티 부지 조감도 (사진=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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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2010년 8월 PF 대출 만기가 도래하자 채권단은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기업회생절차가 시작됐다. 하지만 결국 사업 시행권과 부지는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시공사를 교체하고 사업 재개를 시도했지만, 인허가 과정에서 불거진 비리 의혹이 결정타로 작용하며 사업은 사실상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이 인허가를 대가로 파인시티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형 권력형 비리로 비화됐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파인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이다. 시행사와 금융권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사업은 완전히 멈춰 섰다.


'도심 물류 혁신' 야심, 출발은 빨랐다

전환점은 2015년이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급증하는 택배 물량과 전자상거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첨단물류단지'라는 새로운 정책 개념을 도입했다. 도심 내 낙후된 물류 시설을 물류·유통·정보통신(IT)·주거 기능이 결합된 복합단지로 전환해 배송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제도를 법제화했고, 2016년에는 시행령과 세부 지침을 마련했다. 개발이익의 일부를 공공시설로 환수하되 그 규모를 토지가격의 최대 25% 범위에서 정하도록 했고, 기존 물류 시설에 묶여 있던 업종 규제도 풀었다. 물류와 상업·업무·주거 기능을 하나의 건물에 결합하는 고밀 개발도 허용됐다.


[10년 표류 도심물류]②인허가 비리로 얼룩진 '영욕의 땅' 원본보기 아이콘

하림그룹은 2016년 5월 당시 계열사인 NS홈쇼핑을 통해 양재 화물터미널 부지를 인수했다. 정부는 곧바로 이곳을 전국 6개 도심첨단물류 시범단지 가운데 하나로 지정했다. 당시만 해도 사업은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됐다. 개발계획 수립과 인허가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이르면 2017년 착공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림은 부지에 초고층 복합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하에는 첨단 물류 시설을 배치하고, 지상에는 업무시설과 연구개발(R&D), 상업시설, 호텔, 공연장 등을 결합한 공간을 구상했다. 주거시설도 포함됐다. 단순한 물류기지 구축을 넘어 도시 기능 자체를 재편하는 프로젝트였다.

[10년 표류 도심물류]②인허가 비리로 얼룩진 '영욕의 땅' 원본보기 아이콘

서울시와 '6년 전쟁'…감사원까지 간 정면충돌

하지만 사업은 곧바로 서울시와 충돌에 부딪혔다. 쟁점은 용적률이었다. 하림은 도시첨단물류단지 시범사업이라는 점을 근거로 최대 800% 수준의 고밀 개발을 추진했다. 반면 서울시는 기존 도시계획을 근거로 용적률 400%와 층수 제한을 고수했다. 양재 일대가 상습적인 교통 혼잡 지역인 만큼 고밀 개발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었다. 특정 사업자에게만 초고층 개발을 허용할 경우 형평성 문제와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서울시가 내세운 이유였다. 결국 양측의 입장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하림이 제출한 개발계획안은 서울시로부터 반려와 보완 요구를 반복해서 받았다. 이른바 '인허가 핑퐁'이었다. 인허가 절차는 사실상 멈췄고, 사업은 표류했다.


갈등은 행정 절차를 넘어 감사원과 법원까지 확산했다. 하림 측은 2021년 서울시의 행정이 부당하다며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일부 행정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이후 협상은 새 국면을 맞았다.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의 기조가 일부 완화되면서 사업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3년 서울시 물류단지계획심의위원회는 하림의 개발안을 조건부로 통과시켰다. 하림은 약 5600억원 규모의 공공기여와 교통 대책을 제시했다. 이어 2024년 서울시는 개발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법적 분쟁이 이어졌다. 양재동 부지 내 도로를 둘러싼 소송이 대표적이다. 하림산업은 2021년 서울시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부지는 과거 파이시티가 물류단지 개발을 전제로 기부채납하기로 했던 땅이다. 하림은 개발이 무산된 만큼 기부채납의 효력도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시는 기존 소유자의 사용·수익권 포기를 근거로 맞섰다.


1심은 하림 측 손을 들어주며 약 362억원 지급을 명령했지만, 2심은 이를 뒤집어 서울시 승소로 판결했다. 이후 대법원은 사건을 파기환송 했고, 파기환송심은 다시 하림 측 손을 들어주며 약 600억원대 지급을 명령했다. 현재 사건은 재상고 돼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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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계획이 최종 승인됐지만,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 건축위원회는 하림 측이 제출한 계획안에 대해 '재심 의결'을 내렸다. 업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전면적인 설계 변경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착공 시점은 다시 불투명해졌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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