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양법에 어긋나는 해협 통행료
국제적 선례되면 수출입 교역 어려움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통행료를 받겠다고 나서면서 국제사회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란 전쟁 개전 이후 실제 이란에 통행료를 내고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간 선박들의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긴장을 넘어 국제 해양 질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선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해양법상 존재하지 않는 해협 통행료…운하에만 적용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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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수에즈운하나 파나마운하처럼 자국 해역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세를 부과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제 해양법 전문가들은 이 주장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비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운하와 해협은 해양법상 전혀 다른 성격의 지리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수에즈운하나 파나마운하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수로가 아니다. 한 국가가 자국 내륙을 굴착하고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조성한 인공 건축물이다. 해당 국가의 소유권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지속적인 유지·보수 비용이 발생하는 시설인 만큼 국제사회도 사용료 부과를 정당한 권리로 받아들인다. 반면 호르무즈 해협은 수천 년 전부터 자연이 만들어 놓은 물길이다. 인위적인 투자도, 건설 비용도 없는 천혜의 항로에서 고속도로 톨게이트처럼 통행료를 받겠다는 발상은 현행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의 기본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 국제법학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해협에서 통행료를 받는 것이 아예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국제 해양법이 지금처럼 확고히 정착되기 이전인 19세기 이전까지는 전략적 해협을 틀어쥔 국가가 통행세를 거두는 사례가 실제로 존재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덴마크다. 덴마크는 코펜하겐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이를 흐르는 외레순 해협에서 1436년부터 무려 400년 이상 통행세를 징수했다. 당시 발트해 지역의 해상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이 통행세는 덴마크 국가 재정을 떠받치는 핵심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은 미국이었다. 1855년 미국 정부는 "자연이 만들어 준 물길에 주권을 주장하며 통행세를 징수하는 행위는 불법"이라고 강력히 항의하며 통행료 납부 거부를 선언했다. 미국의 입장에 여러 나라가 동조하면서 덴마크의 400년 관행은 결국 막을 내렸다. 1857년 코펜하겐 협정이 체결되며 외레순 해협의 통행세는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비슷한 역사는 튀르키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요충지인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제하던 튀르키예도 18세기부터 통행료를 거뒀다. 두 해협 모두 대형 선박이 간신히 한 척씩 통과할 수 있을 만큼 협소해 봉쇄와 통제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이 관행 역시 1936년 몽트뢰 국제협약을 통해 정리됐다.


협약은 통행료 자체는 폐지하되, 튀르키예 정부가 해협의 안전을 위해 운영하는 등대·안전요원·항해 지원 서비스의 실비를 선박 톤수에 따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순수한 통행세가 아닌 항해 서비스 비용이라는 형태로 전환한 것이다. 이처럼 해협에서의 통행세는 19~20세기를 거치며 국제 해양법이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하나씩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만까지 끌어들인 이란…호르무즈 통행료 상설징수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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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구조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단독으로 장악한 수역이 아니다. 해협 일대는 이란과 아랍에미리트, 오만 세 나라가 영해를 나눠 보유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핵심 항로는 이란과 오만이 절반씩 나눠 갖는 구조다. 이란이 드론과 탄도미사일 위협으로 해협을 봉쇄하고 있다 해도, 오만의 협조 없이는 이 봉쇄를 장기간 유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미국은 이란의 봉쇄선 동쪽에 별도의 해상 봉쇄망을 추가로 구축했다. 이른바 이중봉쇄 상황이 형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란에 통행료를 지불하고 해협을 통과하려 했던 일부 선박들이 미국 군함 봉쇄선에 가로막혀 이란 항구로 되돌아오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이란으로서는 오만을 중재 채널로 삼아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는 동시에 통행료 징수의 실질적 운영 방안을 협의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20%가 매일 통과하는 에너지 동맥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국제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더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호르무즈에서의 통행세 징수가 현실화될 경우 전 세계 해협으로 이 선례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는 수많은 전략적 해협이 존재한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지브롤터 해협, 동남아시아의 물류 대동맥인 말라카 해협, 그리고 동아시아 안보의 화약고인 대만해협이 모두 이 목록에 포함된다. 이 해협들에서 줄줄이 통행세가 부과되기 시작한다면, 수출입 교역으로 경제를 유지하는 나라들에 돌아오는 충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처럼 에너지와 식량의 상당 부분을 해상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는 수출 타격은 물론 생필품·연료 가격 전반에 즉각적인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안 그래도 전쟁 여파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된 상황에서 물가 급등이 현실화되면 서민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민심 이반에 따른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통행세 논쟁이 불붙을 경우 충돌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많은 해협이 인접국들 사이의 미해결 영유권 다툼 속에 놓여 있다. 통행료라는 경제적 이익이 얽히는 순간, 기존의 영토 갈등이 무력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中이 대만해협서 통행료 징수한다면…한국도 직접적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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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가 가장 예의주시하는 곳은 단연 대만해협이다. 이번 호르무즈 사태를 지켜보며 많은 전략가들이 중국의 대만해협 활용 시나리오를 재점검하고 있다. 기존의 우려는 중국이 대만을 직접 군사 침공하고, 미국과 동맹국들이 참전하는 전면전 시나리오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또 다른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중국이 대만을 직접 공격하지 않은 채로 대만해협의 주요 항로를 장악하거나, 대만으로 드나드는 선박들을 통제하는 '연성 봉쇄' 전략이다.


한중일 삼국만으로도 전 세계 GDP의 30% 이상이 교환되는 동아시아 해역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중동 원유 수출 차질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파가 세계 경제를 강타하게 된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이 시나리오가 국제사회의 개입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대만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공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조차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식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자국 수역 내 군사 훈련을 명분으로 해협을 일시 봉쇄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면,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을 규탄하는 결의안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자동 부결된다. 대만을 직접 침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나 동맹국들이 즉각 군사적으로 개입하기도 명분 싸움에서 불리해진다.


이 때문에 오는 5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해협 봉쇄 문제가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호르무즈 사태가 대만해협의 미래 시나리오를 선취하는 '실전 모의훈련'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미중 양국 모두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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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어떤 결론을 향해 나아가느냐에 따라, 수백 년간 다져온 국제 해양 질서의 틀이 유지될지 아니면 새로운 혼돈의 시대가 열릴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우리나라도 단순히 국제 정세를 관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국의 경제 안보와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한 전략적 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이란 호르무즈 톨비에 주목받는 '뱃길 통행료'…국제법 논란 확산[시사쇼] 원본보기 아이콘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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