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도 머스크도 손 내밀었다…2030년 '왕의 귀환' 예고한 인텔[칩톡]
AI 학습에서 추론으로 초점 이동
인텔 CPU 역할 재조명…빅테크 러브콜 쇄도
기술적 승부수 CoWoS 병목 뚫을 EMIB
한때 '저무는 해'로 치부됐던 인텔이 인공지능(AI) 추론 시장의 개화와 함께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AI 인프라 내 장치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관제 시스템의 역할이 대두되면서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다시금 존재감을 과시하는 분위기다. 인텔의 설계부터 제조, 패키징에 이르는 수직 계열화된 역량이 반도체 패권을 향한 미국의 국가적 야심과 맞물리면서, 업계에선 인텔이 과거의 오명을 씻고 글로벌 반도체 제왕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30년 AI 추론 시대의 관제탑
인텔은 불과 2년 전 시가총액 1000억달러가 붕괴하고, 경쟁사 퀄컴에 인수될 수 있다는 굴욕적인 보도마저 나오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50년 가까이 중앙처리장치(CPU) 설계로 반도체 업계를 호령했지만, AI라는 미래 먹거리 진출에 있어서 경쟁사들보다 한 발짝 늦은 여파다. 2021년만 해도 매출이 인텔의 3분의 1 수준이었던 엔비디아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회사로 올라서면서 인텔이 좁힐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진 점이 단적인 예다.
그랬던 인텔이 다시 한번 반도체 업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이러한 반전의 일등 공신은 급격히 팽창한 'AI 추론' 시장이다. 2030년경 AI 추론 시장 규모가 학습 시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AI 서비스의 전체 시스템을 조율하는 '관제 센터'로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랜드 뷰 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AI 추론 시장의 규모는 972억4000만달러(약 144조원)로, 2030년까지 연평균 17.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초기에는 학습이 중요해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모든 것을 지배했지만, 추론과 서비스로 넘어가면서 CPU가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며 "인텔의 '제온'(Xeon) 라인은 이제 보조 연산 장치가 아니라 AI 서비스의 관제 시스템으로 재정의된다"고 설명했다. 단순 계산을 넘어 데이터 정제·네트워크 관리·논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AI 서비스 단계에선 병렬 계산에 특화한 GPU보다 AI 인프라 시스템 전체의 지능적 관리를 수행할 수 있는 CPU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는 분석이다.
특히 인텔의 최신 제온 프로세서에 탑재된 'AMX' 가속기는 GPU 없이도 방대한 행렬 연산을 초고속으로 처리해 실시간 응답이 중요한 AI 서비스(챗봇, 자율주행 등)에서 낮은 지연 시간과 높은 비용 효율성을 동시에 제공한다.
손잡는 빅테크, 뒤 봐주는 美정부
인텔의 부활 조짐은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과의 파격적인 협력 관계 구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구글은 최근 인텔의 제온 CPU 채택 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차세대 데이터센터 운영의 핵심이 될 인프라 프로세싱 유닛(IPU)을 인텔과 공동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단순한 부품 공급을 넘어 인텔의 설계 자산을 구글의 표준 인프라에 깊숙이 이식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숙적이 될 것 같았던 엔비디아와의 관계 변화도 눈에 띈다. 엔비디아는 인텔에 대한 직접적인 지분 투자와 공동 개발을 발표하며 기존의 날 선 경쟁 관계에서 '부분적 협력 관계'로 급선회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인텔의 제조 역량과 CPU 기술력이 자사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요소임을 인정한 셈이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와 테슬라 역시 AI 생산 인프라인 '테라팹' 구축 파트너로 인텔을 지목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업계는 인텔의 부활 뒤에 숨은 미국의 국가적 전략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TSMC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고 AI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인텔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집중 육성에 나섰다고 본 것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부 매각까지 검토하며 존폐 위기에 내몰리자 지난해 8월 인텔 지분 10%를 89억달러(약 13조원)에 전격 매입하며 운명 공동체를 선언한 바 있다.
이 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더는 기술 패권을 시장에만 맡기지 않기로 하면서 인텔은 이제 기업을 넘어 미국 인프라의 핵심이 됐다"며 "이제 인텔의 가치는 수익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 인텔이 다시 제왕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시장은 이미 주가로 베팅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TSMC 패키징 병목, 인텔 반사이익 누릴까
현재 TSMC의 CoWoS(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 공정의 병목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도 인텔엔 기회다. 전 세계 AI 칩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TSMC의 CoWoS 공정이 생산 능력(CAPA) 부족을 겪으면서, 인텔의 독자적인 2.5D 패키징 기술인 EMIB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어서다. 칩 전체를 정밀한 실리콘 인터포저 위에 올리는 대신 기판 내 필요한 부분에만 작은 브릿지를 심음으로써 CoWos 대비 30%가량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성능 AI GPU 시장은 TSMC가 독점하고 있지만, 맞춤형 AI 칩(ASIC)으로 가면 인텔도 할 말이 생길 것"이라며 "다만 TSMC의 압도적인 양산 경험과 수율을 생각하면, 이제 막 파운드리 고객을 받기 시작한 인텔은 아직 대규모 물량에 대한 신뢰성을 검증받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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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EMIB 등 첨단 패키징 확대와 고성능 CPU 수요 증가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도 강력한 모멘텀이 될 전망이다. 인텔의 AI CPU와 IPU 채택 확대는 곧 고성능 DDR5 및 차세대 메모리 수요 급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텔의 첨단 패키징 공정에는 고부가가치 기판인 FC-BGA(플립칩 볼 그리드 어레이)가 필수적이다. 인텔의 주요 공급사인 국내 기판 업체들의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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