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격제의 역설]④"가격통제 해제 땐 취약층 부담 더 커져…유류세 낮추고 선별지원 해야"
전문가들 제언 들어보니
세재·재정·시장구조 복합대응 필요
필요 계층에 바우처·보조금 지급
단기처방 대신 구조적 대응으로
소비자 불신, 투명성 통해 넘어야
유류세 추가 인하 불가피
이 같은 문제의식은 단순히 가격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는 시장 왜곡과 재정 부담을 동시에 해소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전문가들은 가격 통제 중심의 단일 처방에서 벗어나 세제, 재정, 시장 구조를 함께 조정하는 복합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이 첫 번째로 꼽는 대안은 유류세 인하다. 정부가 지난달 26일 휘발유 유류세 인하율을 기존 7%에서 15%로, 경유는 10%에서 25%로 확대했지만 더 큰 폭으로 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17일 "정부가 유류세로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며 "추가경정예산(추경)까지 편성하면서 유류세 조정을 소극적으로 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류세를 대폭 낮추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기보다 시장 가격을 일정 부분 반영하되, 유류세 조정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유류세 인하는 공급자의 의사결정을 교란하지 않고 가격 신호를 유지하면서도 소비자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현행 최고가격제보다 시장 친화적이라는 평가다.
이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세율 인하분이 주유소 판매가에 완전히 전가되지 않을 수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가격 신호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최고가격제보다 부작용이 적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계층에 선별적 직접 지원 필요
세제 조정만으로는 정책 효과가 전 계층에 고르게 전달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재정 지출의 방식 역시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가격을 낮추는 대신 부담이 집중되는 지점을 직접 겨냥하는 방식이다. 취약계층과 업종에 대한 선별적 지원이다. 현행 제도는 기름을 사는 모든 소비자에게 ℓ당 동일한 혜택을 주기 때문에 연료 소비가 많은 고소득층일수록 절대 혜택이 더 크다. 이 부연구위원은 "화물운송·수산업·농업·대중교통 등 연료비 비중이 높은 업종에 에너지바우처나 유가 연동 보조금을 지급하면 동일한 재정으로 가격상한제보다 훨씬 높은 후생 개선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전 통계청장은 이를 '선별적 환급' 개념으로 설명했다. 유 전 청장은 "가격은 시장에 맡기되, 소득 하위 계층이나 생계형 차량을 모는 영세사업자에게 바우처나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번 추경에 대해서도 "전쟁 추경이라고 했으면서 현금성 민생지원금이 전체 추경 예산 25조원 중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며 "에너지 관련 생활비 지원과 공급망 안정화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 역시 "바우처 지급이나 유류세 조정을 통해 부담이 큰 계층과 업종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공급 확충·구조 개혁 이어져야
단기 처방을 넘어서는 구조적 대응 필요성도 제기된다. 가격을 통제하거나 보조하는 방식만으로는 반복되는 에너지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 부연구위원은 "비축유 방출과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통해 공급 충격에 대한 완충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국내 석유 비축량은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208일분 수준으로, 이를 적시에 활용하는 것이 가격 통제보다 시장 친화적인 공급 안정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구조적 과제로는 국내 석유 시장의 가격 비대칭성 문제가 거론됐다. 국제유가 상승은 빠르게 시장가격으로 반영되지만 하락은 느리게 반영되는 구조가 이번 최고가격제 시행 배경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이 부연구위원은 "최고가격제는 그 결과인 높은 가격만을 억누를 뿐, 원인인 시장 구조는 손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스트리아가 2009년 주유소의 가격 인상 횟수를 하루 1회로 제한하는 규칙만으로 휘발유 가격을 약 23% 낮춘 사례를 예로 들며 "가격 수준이 아닌 가격 조정 행태를 규율하는 접근이 위기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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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교수는 이번 사태로 드러난 구조적 불신 문제도 짚었다. "국제유가가 하락할 때는 체감이 잘되지 않고 상승할 때는 빠르게 반영된다는 인식, 주유소마다 가격 차이가 크다는 점 등 가격 형성 과정의 불투명성이 누적된 불신을 낳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보다 투명한 가격 구조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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