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인터뷰
"보고 나서야 장애인이 그렸구나 하는 그림, 그 순서 바꾸고 싶어"
"장애예술도 문화예술계 한 부분…이제는 주류로 들어가야"
제도 작동·관객 확대 과제 제시

장애인이 그렸기 때문에 보러 가는 그림이 아니라, 보고 나서야 장애인이 그렸구나 하게 되는 그림.


방귀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이 바꾸고 싶다는 것은 장애예술의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순서다. 장애를 먼저 내세우는 오래된 관성에서 한 발 비켜서는 일, 작품이 먼저 오고 작가는 그다음에 오는 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그가 꺼낸 말도 결국 거기 닿아 있었다.

[문화人터뷰]"장애예술, 배려보다 감상으로 만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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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의 말에는 배려나 동정보다 감상과 재능이라는 단어가 더 자주 올라왔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는 말은 짧지만, 기관장이 지금 어디에 방점을 찍는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장애예술을 복지 행사 옆에 덧붙여 두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보고, 듣고, 이야기하고, 다시 찾아오는 관객이 있어야 비로소 예술이 된다는 생각이다. 사회 지도층이 먼저 장애예술을 찾아와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후원자나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관객으로 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올해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꺼내 든 형식도 그 연장선에 있다. 본원에서는 한국 장애예술인 역사전 '길이 된 사람들'을, 모두미술공간에서는 '관계의 기술'을, 모두예술극장에서는 국악 공연을 준비했다. 전시 하나, 공연 하나를 따로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다. 역사와 현재, 감상과 체험, 미술과 무대를 한꺼번에 묶어 장애예술을 복지의 부속 장르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화로 세워보겠다는 쪽에 가깝다. 방 이사장이 예술을 "관계를 가장 부드럽게 이어주는 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그 구상과 겹친다. 같은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금세 말을 트듯, 예술은 설명보다 먼저 사람 사이를 좁힌다는 것이다.

방 이사장이 그리고 있는 장문원의 역할도 단순한 지원기관보다 훨씬 넓다. 창작활동을 떠받치고, 실력을 키우고, 일자리까지 연결하는 구심점. 그가 장문원의 지난 10년을 창작활동 지원, 예술창작 아카데미 운영, 일자리 창출로 정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애예술 활성화 공모 지원사업의 예산이 커지고 신청 건수가 늘어난 것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장애예술인의 저변이 넓어졌다는 신호이자, 장문원이 이 생태계의 중심부로 이동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가 장문원을 두고 '장애예술의 메카'라고 부른 것도 과장이 아니라 자기 규정에 가깝다.


62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한 연극 '젤리피쉬'. 이 작품은 모두예술극장과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이 공동제작한 작품으로 다운증후군이 있는 여성 ‘켈리’가 가족과 사랑 속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두예술극장

62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한 연극 '젤리피쉬'. 이 작품은 모두예술극장과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이 공동제작한 작품으로 다운증후군이 있는 여성 ‘켈리’가 가족과 사랑 속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두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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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보는 다음 단계는 지원 확대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은 주류 진입이다. 장애예술이 내부 커뮤니티의 순환 안에만 머물지 않고, 주류 예술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호명돼야 한다는 뜻이다. 방 이사장이 2026년 이후를 '주류 예술계 진입기', 더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발전하는 '공진기'라고 부른 것도 그래서다. 따로 인정받는 예술이 아니라, 함께 흔들리고 함께 넓어지는 예술. 장애예술을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평범한 일부로 옮겨놓겠다는 말이다.

그 대목에서 방 이사장은 자꾸 제도로 돌아갔다. 창작품 우선구매제도와 의무공연·전시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문장으로 적힌 제도보다 실제로 움직이는 기회다. "열린음악회 무대에 장애예술인이 자연스럽게 서는 일, 드라마와 영화에 장애인 배우가 특별출연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캐스팅으로 들어가는 일" 그는 장소를 한 번 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장애예술을 일회성 행사나 선의의 이벤트로 다루는 문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문화예술계의 일상적인 흐름 안에 들어가야 비로소 제도가 작동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언어를 다룰 때도 의외로 유연하다. '극복'이라는 단어를 두고 무엇은 절대 안 된다고 몰아붙이지 않는다. 장애를 드러내며 활동하는 예술가도 있고, 드러내지 않기를 원하는 예술가도 있다는 것을 먼저 말한다. 그래서 기준은 늘 작품 쪽으로 돌아온다. "장애인이 그렸기 때문에 내가 가야지"가 아니라 "갔는데 장애인이 그렸구나"가 되어야 한다는 그 한 문장은, 방귀희가 장애예술을 둘러싼 시선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은지 거의 다 보여준다. 작품이 먼저다. 그 다음에야 장애도, 서사도, 삶도 따라온다.


모두미술공간에서 전시 중인 라움콘의 작품 '함께 조각', 202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모두미술공간에서 전시 중인 라움콘의 작품 '함께 조각', 202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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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미술공간 전시에 들어오는 설명 로봇 '모지'를 두고 그가 길게 말을 이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각장애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로봇, 화폭을 올리고 내리는 보조 장치, 악보를 읽어주는 기술. 비장애인에게는 부가기능처럼 보이는 것들이 장애예술가에게는 작업을 멈추지 않게 하는 손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본다. 기술이 예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중단되지 않게 받쳐주는 일. 접근성과 창작 환경을 한 덩어리로 보는 기관장의 시선이 그 대목에서 선명해진다.


그의 말 밑바닥에는 오래된 몸의 기억이 깔려 있다. 대학 시절 5층과 7층 강의실을 업혀 올라가고, 내려가 밥을 먹기 어려워 배고픈 날을 견디며 글을 붙잡았던 시간. 책에서 눈에 들어온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다가, 언젠가 자기도 이렇게 쓰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시간. 방송 출연은 원고 청탁으로 이어졌고, 그는 방송작가로 31년을 일했다. 그 이력은 개인의 고생담으로만 남지 않았다. 예술을 취미가 아니라 생업의 언어로 보게 한 근거가 됐고, 장애예술 역시 삶을 꾸리는 일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어졌다. 기관장이 된 뒤에도 그가 예술을 자꾸 직업, 구조, 기회의 언어로 옮겨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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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이사장은 장애예술을 특별하게 봐달라고 하지 않았다. 먼저 예술로 봐달라고 했다. 그 말은 점잖지만 안쪽은 단단하다. 장애인의 날을 기념일의 언어로만 넘기지 말고, 장애예술을 복지의 부속물이나 치료적 활동으로 밀어두지 말자는 요구가 그 안에 들어 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바깥으로 내놓는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장애예술을 '그냥 예술'로 받아들이는 일. 순서만 바뀌어도, 아마 거기서부터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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