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ew]전문가의 가치는 어디에서 올 것인가
지식의 시대는 끝, '판단의 시대' 도래
AI가 답을 줄 때 인간은 책임을 진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전문직의 업무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컨설팅 회사에서는 초급 애널리스트가 하던 리서치와 자료 초안 작업을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고, 로펌에서는 계약서 검토와 판례 요약의 상당 부분이 AI 기반 도구로 처리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도 진단 보조, 차트 요약, 환자 기록 정리가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 겉으로 보면 AI는 전문가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더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의 역할이 '답을 주는 사람'에서 '답의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전문성의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었다. 의사는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의학 지식을 갖고 있었고, 교수는 특정 분야의 이론과 데이터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정보 자체는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법률 상담 전 AI에 먼저 질문하고, 병원 방문 전에 자신의 증상에 대한 AI 기반 설명을 먼저 확인한다. 정보 접근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전문가의 권위는 단순한 지식 보유에서 나오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문가의 가치는 어디에서 올 것인가. 핵심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판단의 책임과 맥락의 해석 능력이다. AI는 빠르게 답을 제시하지만, 그 답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결정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미국 의료기관에서 AI가 특정 질환 가능성을 높게 제시하더라도 실제 치료 방향을 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법적·윤리적 책임을 지는 것은 결국 의사다. 기업 전략에서도 마찬가지다. AI가 시장 분석을 통해 구조조정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그 결정이 조직 문화와 장기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관리자다.
이 변화는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은 의료, 교육, 법률, 금융과 같이 전문적인 판단이 중요한 영역에서 제도화된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고, 그 판단을 신뢰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AI가 기본적인 정보 제공과 초기 분석 기능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 역시 점차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변화의 핵심은 전문가의 역할이 줄어드느냐가 아니라, 그 역할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거나 표준적인 답을 제공하는 기능은 AI가 상당 부분 담당할 수 있다. 반면 개별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고, 서로 충돌하는 요소들 사이에서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리며, 그 결정의 결과를 설명하고 책임지는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단순히 전문가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간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이미 평균적인 지식 업무는 빠르게 AI로 대체되는 반면, 최상위 전문가의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기본적인 정보 정리와 초안 작성은 누구나 AI를 통해 할 수 있기 때문에 진짜 차이는 누가 더 복잡한 맥락을 읽고 더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AI 시대에는 단순 지식 전달형 전문직은 압박을 받을 수 있지만, 고도의 판단과 신뢰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오히려 탁월한 전문가의 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설명 가능성과 신뢰의 문제다. 사람들은 단순히 정확한 답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의료, 법률, 교육, 경영 전략처럼 고위험 의사결정 영역에서는 결과 그 자체보다 그 결과에 이르는 논리와 책임 구조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AI가 제시한 답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그것이 왜 타당한지 설명하고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은 여전히 인간 전문가의 영역이다.
결국 AI 시대의 전문성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판단, 설명, 책임, 그리고 신뢰를 설계하는 능력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앞으로 경쟁의 핵심은 누가 더 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복잡한 맥락을 읽고 불확실성 속에서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AI가 정답에 가까운 답을 빠르게 제시할수록, 오히려 인간 전문가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더 무거워진다. 기술은 답을 만들어주지만, 그 답을 사회적 신뢰로 바꾸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가장 가치 있는 전문가는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결정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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