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1만개 처벌조항 검토"
경제형벌 합리화 성패는 디테일
'기업하기 좋은 사법 토대' 기대

최석진 로앤비즈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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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마도 형사법 분야에서 가장 오래 논의돼 온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출발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으로 상징되는 '응보형주의'였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동일한 피해를 가해자에게 가함으로써 국가나 사회의 평화를 무너뜨린 범죄자를 응징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라 여겼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형벌의 목적이 범죄자에 대한 응징보다는 일반인들의 범죄를 예방함으로써 사회를 방어하는 데 있다는 '일반예방주의'가 등장했다. 잠재적 범죄자인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에게 '범죄가 주는 쾌락보다 형벌이 주는 고통이 크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겁을 먹게 하는 이른바 위하 기능을 형벌의 목적으로 봤다. 그리고 19세기 말 이후 범죄자를 교화시켜 사회에 다시 적응시킴으로써 재범을 방지하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라는 '특별예방주의'가 나타났다.

현재는 형벌의 목적을 응보와 예방, 양자의 혼합으로 보는 것이 세계적으로 주류적 입장이며, 나아가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하고 가해자와 공동체의 관계를 회복하는 '회복적 사법'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겸 비상 경제점검회의에서 1만개가 넘는 형사 처벌 조항에 대한 치밀하고, 신중한 검토를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1개의 조항을 검토할 때 전문가나 훈련된 사람들을 시켜서 다 비교 교량을 잘해야지, 그냥 막하면 안 된다"며 "경솔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지난해부터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에 대한 주무 부서 장관들의 경과보고가 있었는데, 단순히 징역형을 벌금형으로, 벌금형을 과태료로 바꾸는 것을 '형벌의 합리화'로 인식하면서 기계적으로 처벌 조항을 개정하려는 행태를 지적하며 나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제재에 대한 이해를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일선 공무원 몇몇이 모여서 '1년짜리니까 1000만원', 이렇게 하면 안 된다"며 "1만개나 되기 때문에 함부로 그렇게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심사위원회나 이런 걸 만들든지 해서 한 개, 한 개 조항을 치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그 조항이 만들어진 이유, 형벌을 둔 이유, 형량을 그렇게 정한 이유, 그리고 일반예방, 특별예방, 응징, 다른 것과의 균형, 이런 것들을 다 따져보고 해야지, 한 개, 한 개 할 때마다 많다고 막 하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법률가 출신인 이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재정경재부 장관 등 회의에 참석한 어느 국무위원보다도 이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 왔고, 바로잡으려는 의지 또한 강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과도한 처벌 조항을 언급하며, 예측불가능한 사회, 전과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사회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독일은 250개 법률에 형벌 조항이 있는데 우리는 1060개, 개별 규정을 따져 보면 1만1165개의 처벌 조항이 있더라"며 "독일보다 형벌 조항이 5배가 많다. 아무 제재 효과도 없는 벌금 300만원을 위해 수사, 재판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라고 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재경부 보고 사안 중 벌금 3억원을 벌금 1억5000만원으로 낮춰준 사례를 짚어내 "금융범죄는 범죄로 인한 수익이 많으니까 서민범죄와 달리 벌금액을 많이 올리는 게 맞다"고 했다. 단순히 처벌을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 상응하는, 합당한 제재를 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 개정 작업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코스피 5000 시대' 공약을 지켜낸 이 대통령이 배임죄 개선을 요구한 데 이어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킬 만한 큰 화두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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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 대통령의 지시가 범죄에 상응하는 적정한 형벌 정비를 통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범죄자들이 수익을 남길 수 없는 사회, 그리고 기업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최석진 로앤비즈 스페셜리스트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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