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한 줄에 4000원 넘보는 고물가 시대
자립 기반 약한 청년들은 끼니부터 타격
거지방·거지맵 이어 '무료 절밥' 열풍까지

"불자는 아니지만, 식비를 아낄 수 있으니 계속 오려고요!"


지난 9일 낮 12시께 서울 동작구의 사찰 상도선원.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였지만, 격주 목요일마다 찾아오는 '청년밥심'을 향한 대학생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고소한 밥 냄새를 따라 들어간 공양간의 메뉴는 버섯 스파게티와 신선한 샐러드, 바삭하게 튀겨낸 고추부각 등이었다. 좁다란 공간에 4~6명씩 앉을 수 있는 테이블 3개가 놓였고 대학생 12명으로 금세 채워졌다. 사찰 관계자는 "요즘에는 학생들이 선호하는 메뉴를 미리 물어보고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정오께 서울 동작구 상도선원을 찾은 대학생들이 사찰밥을 담고 있다. 이지예 기자

지난 9일 정오께 서울 동작구 상도선원을 찾은 대학생들이 사찰밥을 담고 있다.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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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행진이 이어지면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들 사이 생존형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사찰 공양간의 무료 배식 프로그램을 찾거나 1만원 이하 가성비 메뉴를 판매하는 식당을 공유하는 이른바 '거지맵'이라는 온라인 문화도 생겨났다.

16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에 따르면 올해 2월 서울 지역 대표 외식 메뉴 8종의 평균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4.3% 올랐다. 상승 폭이 7.4%로 가장 컸던 김밥은 3800원으로 4000원대에 근접했다. 서민의 한 끼라고 불리던 칼국수는 한 그릇에 9962원으로 1만원 진입을 앞뒀다. 여름철 보양 메뉴인 삼계탕은 1만8154원으로 학생들이 엄두도 내기 어려운 메뉴가 됐다.


아르바이트 등 제한적인 소득에 의존하는 학생들에게 고물가는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대학가에서 선배가 새내기에서 밥을 사주며 친목을 다지던 '밥약(밥 약속)' 문화도 물가 장벽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사찰에서 밥을 먹던 중앙대 학생 김수현씨(21)는 "혼자 학식 두 끼만 먹어도 1만원이 넘어가다 보니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기 겁난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전했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 따르면 청년밥심 등 주요 사찰 무료급식 이용자는 지난해보다 약 1.5배 증가했다. 강북구 화계사는 매주 화요일 방문자가 평균 120명에 달하고, 성북구 개운사는 격주 금요일마다 20명 수준이던 방문자가 최근 50명대로 늘었다. 숭실대 학생 이서현씨(21)는 "식비 부담 때문에 학식은 줄을 서도 못 먹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에서 대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에서 대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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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고물가 생존법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진다. 1만원 이하 식당만 골라 보여주는 '거지맵'이 대표적이다. 이용자가 가성비 식당 후기를 모아 완성되는 이 지도는 요즘 대학가에서 생존 지침서로 통한다. 거지맵의 모태가 된 익명채팅방 '거지방'에선 무료 전시 정보나 편의점 '1+1' 행사, 유통기한 임박 상품 구매법 등 지출을 줄이는 노하우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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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파고가 자립 기반이 약한 청년들의 끼니 문제부터 타격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 약세와 중동 정세 불안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청년들의 생활고가 가중될 수 있다"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천원의 아침밥'과 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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