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중심 '테크노크라트 리더십'
도시공학 박사 시장이 바꾼 풍경
'디자인 행정' 관광허브의 경쟁력

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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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깨끗해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여기가 내가 알던 태국이 맞나?"


2년 만에 찾은 태국 방콕은 예상보다 훨씬 정돈돼 있었다. 과거의 혼잡하고 어수선한 동남아 대도시라는 이미지, 특히 코로나 기간 방콕의 거리 상황은 무척이나 심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관리된 질서와 정돈된 거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서울보다 더 깨끗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믿기지 않아 주요 관광지 주변의 뒷골목까지 꼼꼼하게 돌아다니며 확인했다. 단순한 미화 작업이라기에는 변화의 폭이 크다. 담배꽁초조차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4월13일 시작된 송끄란 물축제(태국 설날)를 앞두고 도시는 물과 사람으로 넘쳐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거리의 질서는 놀랄 만큼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 도시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방콕은 어째서 이렇게 깨끗해졌을까.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도시의 물리적 구조 자체다. 방콕을 상징하던 복잡한 전선은 점차 지하화되고 있다.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뒤엉킨 전선이 남아 있지만, 주요 도심과 관광 동선을 중심으로 깔끔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밖에도 오토바이와 태국식 삼륜차 '뚝뚝'이 눈에 띄게 줄어든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덕분에 교통흐름이 원활해지고 소음과 분진까지 크게 줄었다.

방콕 도심 속 공용자전거는 서울보다도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정호재

방콕 도심 속 공용자전거는 서울보다도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정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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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능력 '만렙' 시장이 바꾼 변화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도시 행정의 성과를 넘어 태국 정치의 실용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태국은 정권의 잦은 교체 등 중앙 정치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오히려 방콕과 같은 대도시의 행정 역량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도시의 청결과 효율성이 곧 정치 개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읽히는 이유다. 2022년 5월 당선된 찻찻 싯티판(Chadchart Sittipunt) 방콕 시장은 기존 정당 정치에 대한 피로감 속에서 나타난 하나의 정치적 실험을 성공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 MIT와 일리노이대에서 수학한 도시공학 박사이자 전 교통부 장관 출신인 그는 태국 정치의 고질적인 이념과 진영 갈등을 벗어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중산층과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오랜 군부독재와 결을 달리하는 그의 행정개혁은 가시적 성과로 이어졌다. 취임 이후 그가 집중한 것은 거창한 도시 개발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도시 기능의 복원이었다. 새벽부터 직접 거리를 누비며 배수구와 보도블록을 점검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그의 '테크노크라트 리더십'은 방콕에 전례 없는 효율성을 부여했다. 거창한 정치적 구호 대신 쓰레기 수거 시스템 정비와 지정 구역 내 노점상 재배치 등 가장 기초적인 생활 행정에 집요하게 매달린 결과, 방콕은 고유의 에너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혼란을 정교하게 디자인하는 세련된 메가시티로 거듭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보여준 균형 감각이다. 방콕은 노점상과 길거리 경제가 살아 있는 도시다. 이를 무작정 철거하는 방식은 도시의 생명력을 훼손할 수 있다. 찻찻 시장은 노점상을 전면적으로 제거하기보다는 일정 구역으로 재배치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덕분에 방콕 특유의 활기는 유지하면서도 불편함과 무질서는 줄었다.


3개월 앞으로(2026년 7월) 다가온 방콕 시장 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도시 정비 성과는 유권자에게 직접 체감되는 중요한 평가 지표로 작용한다. 대표적 지한파 학자인 반딧 잔롯짜나킷 쭐라롱껀대 교수는 "군부와 반대편에 섰던 찻찻 시장 취임 이후 방콕은 글로벌 도시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렸다"며 "혼란스러운 태국 정치권에서 방콕 시장의 두드러진 행정 역량은 다른 동남아 국가에도 함의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방콕의 지하철 시스템인 BTS는 어느 역이나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 정호재

방콕의 지하철 시스템인 BTS는 어느 역이나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 정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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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관광 도시의 자부심

결국 관광 산업의 핵심은 수도의 도시경쟁력이다. 태국은 오래전부터 관광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설정해왔고, 방콕은 그 중심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관광 산업이 붕괴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회복 속도는 매우 빨랐다. 태국 정부는 비자 완화, 장기 체류 프로그램, 디지털 노마드 유치 정책 등을 통해 외국인 유입을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방콕은 다시 수천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글로벌 관광 허브로 복귀했다. 관광객이 몰리는 도시에서 '깨끗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다.


방콕의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도시가 지닌 압도적인 관광 지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024년 기준 방콕을 찾은 총방문객은 약 4720만명에 달하며, 그중 외국인 관광객만 3240만명에 이른다. 이는 단일 도시 기준으로 세계 최상위권 규모로 파리나 런던, 뉴욕 등 서구권의 전통적인 메가시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뉴욕이나 런던이 글로벌 경제와 비즈니스의 중심지로서 자연스럽게 유동 인구가 모이는 곳이라면, 방콕은 도시의 존재 이유 자체가 외국인들의 '경험 소비'를 위해 설계된 거대한 관광 플랫폼에 가깝다. 이 폭발적인 규모야말로 방콕이 거리를 정돈하고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도시 인프라를 관리해야 하는 가장 강력한 경제적 명분이다.


이 지점에서 방콕의 도시 성격이 드러난다. 서울이 시민의 생활을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라면, 방콕은 관광객의 경험을 중심으로 재편된 도시다. 거리와 공간은 소비를 위해 정비되고, 환경은 체험을 위해 관리된다. 따라서 방콕의 청결은 자발적인 시민의식의 결과라기보다 관광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방콕은 '관리된 청결'을 만들어내는 도시다.


도시의 세계화도 변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방콕은 더 이상 지역 중심 도시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과 인력이 유입되는 메가시티로 변모하고 있다. BTS와 MRT로 대표되는 대중교통망은 빠르게 확장됐고, 그랩(Grab)과 같은 플랫폼 기반 이동 서비스가 자리 잡으면서 교통질서도 이전보다 정돈됐다. 여기에 전기차 보급 확대와 노후 차량 규제가 맞물리면서 대기 환경 역시 개선되고 있다. 도시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면서 시민과 관광객이 체감하는 환경도 함께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방콕의 변화는 단일한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전선 지하화와 같은 물리적 정비, 찻찻 시장의 행정 역량, 관광객 유치를 중심으로 한 국가 전략, 그리고 도시의 세계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방콕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도시로 재구성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단순히 '깨끗해졌다'는 수준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방콕이 여전히 번잡한 것은 확실하지만, 그 혼란은 이제 방치된 것이 아니라 관리되는 생동감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관리된 혼란'이야말로 현대 도시의 뚜렷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방콕은 지금 그 방향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방콕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도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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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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