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버려진 자리에서 관계가 피어나다 '오펀스'
세상과 단절된 고아형제
납치된 한 남자와 '동거'
고립된 삶, 위로·회복 그려
미국은 유독 고아와 관련된 서사가 많은 나라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 아니라 이민자들이 세운 국가라는 태생적 배경과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개척정신이 이러한 서사의 토대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 미국을 대표하는 영웅들은 대부분 부모 없는 역경을 이겨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연극 '오펀스'도 제목 그대로 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트릿과 필립 형제 그리고 이들 형제의 집에 납치돼온 중년의 해롤드.
트릿은 소매치기범이다. 그는 필립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물건을 훔친다. 필립은 형 트릿의 극단적인 보호를 받는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바깥 공기가 치명적인 알레르기를 유발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형의 경고를 곧이곧대로 믿는다. 부모가 없어 사회화되지 못한 형제의 순수하지만 절제되지 않은, 그래서 매사 과장된 행동과 대화는 시종 웃음을 유발한다.
해롤드는 술에 취한 상태로 필립에게 납치돼 이들 형제의 집에 발을 들인다. 지금은 큰돈을 벌었지만 해롤드 역시 어린 시절 신문팔이로 연명하던 고아였다. 해롤드는 형제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형제를 부모처럼 보호해 주겠다고 결심한다. 형제와 함께 지내며 그들에게 사회의 규범을 가르치며 가족이 돼가는 모습은 적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미국 극작가 라일 케슬러가 쓴 오펀스는 1983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초연된 오래된 작품이다. 하지만 극 전반에 흐르는 경쾌한 리듬은 전혀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해롤드가 형제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는 동시대성을 지니고, 그를 시대를 초월해 언제나 필요한 '어른'의 모습으로 남게 한다.
오펀스는 비슷한 시기 고아 소녀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애니'를 떠올리게 한다. 뮤지컬 애니는 1976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이듬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7관왕을 휩쓸 정도로 비평과 흥행 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1982년에는 할리우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오펀스와 애니는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극이 다루는 시대적 배경은 차이가 있다. 애니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가정이 붕괴하고 고아들이 넘쳐났던 시대다. 반면 오펀스의 배경은 1980년 전후다. 대공황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지만, 1970년대에는 오일 쇼크로 인해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겪는다. 이러한 위기는 정부 정책 전환의 계기가 됐다. 1981년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다. 레이건 정부는 정부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는 인식 아래 복지 축소와 감세 등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오펀스는 사회의 보호에서 밀려난 고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를 냉소적으로 반영한 작품으로도 읽힌다.
김태형 연출은 "오펀스는 굉장히 기괴하게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를 원하고 있는 사람들, 또 내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작품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연출은 또 "사회 질서에 편승하지 못하고 소외된 약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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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펀스는 1986년 웨스트엔드, 2013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국내에서는 2017년 초연했으며 이번이 네 번째 시즌 공연이다. 오는 5월31일까지 대학로TOM 1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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