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에 마주한 진나라의 숨결…청재 민승준 작가, 인사동서 '오소'를 깨우다
계명대 서예과서 중국 산동대 박사까지 '학문적 집념'이 빚은 필치
2000년 전 '7척 3촌' 사내의 초상…역사적 고증과 예술의 만남
대구와 청도를 잇는 서예 가문, 그리고 '선(禪)'의 세계
대구 서단의 촉망받는 기수이자, 학문과 예술을 겸비한 청재(淸齋) 민승준 작가(50)가 서울 인사동에서 특별한 개인전을 갖는다.
오는 5월 6일부터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고대 문자의 미학을 현대적 서예로 풀어낸 작가의 정수를 보여주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올해로 지천명에 접어든 민승준 작가는 서예의 본질을 파고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공부하는 예술가'다.
서예의 메카인 계명대학교 서예과를 졸업한 그는 서예 미학의 원류를 찾아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 최고의 명문 중 하나인 산동대학교에서 '중국 전국시대 중산국 청동기명문의 미학연구'로 문예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단순한 서예가를 넘어 고대 문자학의 권위자로 꼽힌다.
춘추전국시대의 고새(인장)와 청동기 명문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온 그의 필획에는 학문적 깊이가 주는 묵직한 힘이 서려 있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단연 진나라 시대의 행정 기록인 '리야진간(里耶秦簡)'을 재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2000여 년 전 기록된 어느 남자의 신분 정보를 화폭에 옮겼다.
"한단 한심리 출신 오소(吳騷), 타원형 얼굴에 키는 7척 3촌."
민 작가는 이 기록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특히 '7척 3촌'이라는 수치에 주목해, 당시 진나라 척도를 환산하면 약 170cm에 달하는 당당한 체격의 사내였음을 역사적으로 추론해냈다.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의 1척은 약 23.1cm로, 이를 환산하면 약 170cm에 해당한다.
평균 신장이 160cm 초반이었던 당시 기준으로는 오늘날의 185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대남자(大男子)'였던 셈이다.
작가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원형 얼굴(隋面)'과 '밝은 피부색(黃晳色)'이라는 기록을 통해 당시 국가가 인구를 관리하던 정교한 생체 인식 이론을 붓의 번짐과 마찰 속에 담아냈다.
사진이 없던 시대, '황색 빛 피부'와 '긴 얼굴'이라는 묘사만으로 한 사람의 존재를 증명했던 고대인의 삶이 민 작가의 붓끝에서 현대적인 조형미로 재탄생했다.
민승준 작가의 예술적 뿌리는 부친인 민영보 선생에게서 시작된다.
경북 청도 출신의 서예가인 부친의 뒤를 이어 대구 서예의 맥을 잇고 있는 그는 아버지와 함께한 부자전(父子展)을 통해 서예 가문의 단단한 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선(禪)으로 가는 선' 서예도서관 대표이자 한국서화평생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태극권 전수자이자 요가 수련자이기도 하다.
몸의 호흡을 글씨에 싣는 그의 작업 방식은 '움직이는 명상'과도 닮아 있다.
이번 전시는 계명대 서예과의 탄탄한 기초 위에 산동대 박사 과정에서 다진 학문적 고증이 더해져, 서예가 단순히 글씨를 쓰는 행위를 넘어 역사를 복원하는 인문학적 작업임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승준 작가는 "서예는 중독이 아닌 수행이다"며 "단순한 기술적 연마가 아닌, 내면의 결핍을 채우고 치유하는 '예술 수행'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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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자호(自號)한 '이지(二之, easy)'에는 형식을 초월해 본질에 닿고, 대중과 더 쉽고 깊게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며 "서예는 사람과 시대를 잇는 소통의 수단이며, 마찰과 번짐 속에서 메시지가 스며드는 고귀한 표현이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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