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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종량제 봉투 품귀 현상으로 국민 대다수가 나프타의 존재를 알게 됐다. 최근 만난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이제야 친구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나프타는 비닐봉지,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데 쓰는 에틸렌의 주원료인데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추출된다. 중간 단계 부산물인 나프타는 원유 및 석유화학 관계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였다.


나프타는 미국과 이란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유명해졌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나프타의 절반(45%) 가까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중 77%가 중동산이고 54%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전쟁 이후 나프타 직접 수입은 물론, 원유 수급마저 끊어지면서 연쇄적으로 국내산 나프타 추출도 어려워졌다. 나프타를 주원료로 에틸렌을 생산하는 공장들은 가동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고,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회사인 여천 NCC는 고객사에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기도 했다.

최근 한 달간 '금(金)프타'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업황과는 달리 나프타는 몇 년째 공급 과잉에 시달려왔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경쟁업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면서 국내 나프타 분해 업체들은 공멸을 피하기 위해 감산을 본격화했다. 국내 나프타 분해 설비는 주로 다양한 산업에서 대량으로 사용되는 범용 제품을 생산해왔다. 공급이 쌓이자 정부는 국내 나프타 분해 설비 생산능력의 18~25%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고, 대산·여수·울산 3대 산업단지에서 설비 폐쇄와 통폐합 시나리오가 가시화했다. 미국과 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2월25일 정부는 '대산 1호 구조조정안'을 승인했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NCC를 서둘러 줄이기 시작했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생산능력을 상실해 해외로부터 범용 전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위기 상황이었다면 종량제 봉투 품귀 정도로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프타가 활용되는 자동차 부품, 의료기기, 반도체 소재, 조선업까지 공급 충격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로 석화산업이 제조업의 기초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왔음을 직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이번 위기는 석화업계가 고민해온 질문을 수면 위로 다시 끌어올렸다. 무조건 '스페셜티'로만 가는 게 옳은 방향일까. 물론 중국의 추격으로 이미 시장에서 가치를 상실한 국내 석화산업이 고부가가치 특수화학 소재로 전환하는 일은 생존 전략으로 꼭 필요하다. 기술 장벽이 높고 마진이 두꺼운 제품군으로 포트폴리오를 옮겨가는 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중동 사태를 겪고 나니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범용 생산능력을 너무 많이, 빠르게 걷어낼 경우 공급망 위기 때 완충재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용 제품은 마진이 낮고 중국 기업에 밀리고 있지만, 그 사실 자체가 곧 '없어도 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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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산업의 과제는 단순히 스페셜티냐 범용이냐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의 비율, 어느 정도의 속도로 무게 중심을 옮길지가 더 중요하다. 감산과 설비 폐쇄를 주도하는 정부가 균형을 놓쳐서는 안 된다. 어떤 설비가 경제성의 문제이고 어떤 설비가 안보의 문제인지를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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