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현미경]두 달째 결론 못 내는 '홍콩 ELS' 과징금…딜레마 빠진 금융당국
'소비자 보호 vs 생산적 금융' 충돌에 결론 지연
1.4조 과징금 놓고 감액 수위 고심…5월로 넘어갈 가능성도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와 관련해 은행권에 부과할 과징금 규모를 두고 금융당국의 고심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보호' 메시지 발신 차원에서 제재가 필요하지만,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이 은행 자본 부담을 키워 생산적 금융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날 오후 예정된 금융위 정례회의에서도 홍콩 ELS 불완전판매 관련 은행권 제재 안건을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징금을 1조 4000억 원에서 크게 감액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재하면 '정치적 판단'에 의한 과도한 압박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며 "어떤 결정을 내려도 수위를 둘러싼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최종안을 놓고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은행권의 자율 배상 노력과 향후 행정소송 가능성 및 판례 흐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만큼 판단에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지난 2월12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은행권에 대한 제재 의결안을 송부받았다. 금감원은 제재심을 통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대해 총 1조 4000억 원의 과징금과 기관경고를 의결한 바 있다. 다만 제재심은 금감원장 자문기구로 법적 효력이 없어, 최종 제재 수위 결정은 금융위의 몫으로 남은 상황이다. 지난해 개정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금융위는 피해 구제 노력을 반영해 과징금을 최대 75%까지 감면할 수 있다.
금융위가 두 달째 장고를 이어가는 배경에는 소비자 보호 기조와 생산적 금융 확대 정책 간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현 정부는 은행권에 기업 금융 확대를 통한 실물 자금 중개 기능을 거듭 강조해 왔다. 5대 금융지주는 향후 5년간 500조 원이 넘는 자금을 생산적 금융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은행의 자본 여력이 깎여 이 같은 정책 기조가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자율 배상, 투자자의 자기 책임 원칙, 은행의 부당이익 규모가 약 1000억 원 수준으로 과징금(1조 4000억 원) 대비 낮다는 점도 고려 요인이다.
반면 과징금을 대폭 삭감할 경우 소비자 보호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홍콩 ELS 불완전판매는 2021년 금소법 시행 이후 첫 대형 사례로, 금융회사의 책임 범위와 제재 기준을 결정하는 상징적 시험대다. 과징금 수위를 지나치게 낮출 경우 당국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은행권이 분쟁조정안에 따라 전체 피해자의 90% 이상에게 총 1조 3000억 원 규모의 자율 배상을 완료한 점은 참작 요인이지만, 자율 배상만으로 법적 책임을 갈음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팽팽하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감액의 적정 수준을 놓고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금감원의 과징금 규모가 과도하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다만 금감원은 당초 1조 9000억 원을 검토했다가 자율 배상 등을 반영해 1조 4000억 원으로 낮춘 것이며, 원칙적으로는 최대 4조 원까지 부과가 가능했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작량 감경' 권한이 없다는 것이 금감원의 일관된 설명이다. 금융위는 별도의 제한 없이 재량 범위 내에서 감액이 가능한 작량 감경 권한을 갖고 있어, 그만큼 정무적 판단을 요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최종 결정이 5월로 넘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위 정례회의는 이달 29일 한 차례 더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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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과징금을 조 단위로 부과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은행권의 자율 배상 노력, 생산적 금융 등을 감안해 금감원 원안보다 상당폭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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