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공간서 무단 화기 작업…기본 안전 수칙 전무
'2인 1조' 원칙 무시…'안전불감증' 참사
예비신랑·다둥이 아빠 두 영웅, 오늘 눈물의 영결식

전남 완도군의 한 수산물 가공업체 냉동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방관 2명이 순직한 가운데, 화재 원인을 제공한 30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이번 화재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 부재와 영세 사업장의 구조적 문제가 겹쳐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파악되고 있다.


14일 완도경찰서는 전날 완도군 군외면의 한 냉동창고에서 불을 낸 혐의(실화)로 중국 국적의 노동자 A씨(30대)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확인된 A씨는 사안의 중대성과 도주 우려 등이 고려돼 영장이 신청됐다.

순직한 고(故) 박승원 소방경과 고(故) 노태영 소방교

순직한 고(故) 박승원 소방경과 고(故) 노태영 소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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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바닥재인 에폭시를 제거하기 위해 가연성 물질이 도포된 밀폐 공간에서 가열 장비(토치)를 무단으로 단독 사용하다 화재를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의 안전 관리는 사실상 전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 대표 60대 B씨는 A씨에게 위험천만한 화기 작업을 지시했으나, 화재 발생 당시 그가 현장에 함께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경찰의 직접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통상적인 산업 현장의 필수 안전 지침인 '2인 1조' 작업 원칙이나 최소한의 안전 장비 지급, 사전 교육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정황이 짙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고용된 불법체류 노동자가 화재 위험이 높은 작업에 사실상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내몰린 셈이다. 이와 함께 화재 진압 후 '잔화 정리' 과정에서의 현장 매뉴얼 점검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번 화재는 지난 12일 오전 8시25분께 발생해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1차 진압을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잔화 정리를 위해 내부로 재진입하는 과정에서 순식간에 확산한 화염과 유독 가스에 대원들이 갇히고 말았다.


우레탄폼 등 화재에 취약한 단열재가 쓰인 냉동창고 특성상 내부 불씨가 재발화할 위험이 큼에도 대원들의 생명을 담보할 정밀한 현장 지휘와 위험 예측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철저한 복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피 지시가 내려졌음에도 끝내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순직한 고(故) 박승원 소방경과 고(故) 노태영 소방교의 사연은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노 소방교는 불과 5개월 뒤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랑이었다. 세 아이의 가장인 박 소방경은 가족을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소방 드론 운용자'로 보직을 변경하고자 최근 1급 드론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당시 함께 자격증을 준비한 한 지인은 "박 소방경이 '처자식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업무로 변경하고 싶어 시험을 준비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A씨의 실화 혐의와 함께 대표 B씨에 대해서도 업무상 과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면밀히 조사 중이다. 또한 정확한 화재 원인과 사고 경위를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합동 감식을 벌여 책임 소재를 명백히 가릴 방침이다.


한편,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두 소방 영웅에게 1계급 특별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장례는 전남도지사장으로 엄수되며, 완도 문화예술의전당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시민들과 정·관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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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순직 소방관은 14일 영결식을 마친 뒤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영면에 든다.


호남취재본부 이준경 기자 lejkg1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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