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기와집 15채 값의 백자…무엇을 지켜냈나를 묻는 전시
간송미술관 '문화보국'展
간송 탄신 120주년, 근대 미술시장의 그늘과 간송의 결단
국보 '백자'·추사학파 서화 등 46점 공개
보화각 2층 중앙의 유리 진열장 안에 백자 한 점이 놓였다. 국화와 난, 벌레가 얹힌 이 병은 오늘날 국보다. 하지만 간송미술관 '문화보국'이 먼저 보여주는 것은 국보의 위엄이 아니라, 그것이 한때 경매장 한복판에서 가격표를 달고 떠돌았다는 사실이다. 이 전시는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빼앗길 뻔한 것을 어떻게 붙잡았는지 되짚는 자리다.
15일 개막하는 이번 전시의 미덕은 '명품전'에 머물지 않는 데 있다. 간송미술관은 1922년 일본 골동품상들이 세운 경성미술구락부를 전면에 내세운다.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 기관이었지만, 실상은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던 통로였다. 광복 전까지 260여회의 경매가 열렸고, 간송 전형필은 조선인의 출입이 사실상 막힌 그 공간에서 일본인 중개인을 내세워 1930년부터 1944년까지 32차례 경매에 참여해 350여건의 유물을 사들였다. 전시는 바로 그 '구매의 기록'을 '수호의 기록'으로 다시 읽게 만든다.
가장 강한 장면은 역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앞에서 만들어진다. 청화·철화·동화 세 안료를 모두 쓴 이 병은 1936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1만4580원, 당시 기와집 15채 값에 낙찰됐다. 일본 거상 야마나카 상회와 맞붙은 끝에 간송이 손에 넣은 작품이다. 전시가 인상적인 것은 이 병을 단지 '비싼 국보'로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경매 기사와 기록을 함께 배치해, 한 점의 백자를 보는 일이 곧 유출의 위기와 안목의 결단을 동시에 보는 일이 되게 한다. 생활 용기로 출발한 백자가 문화사의 전선으로 이동하는 순간이 여기 있다.
2층 회화 섹션도 좋다. 김명국의 '비급전관', 심사정과 강세황의 '표현연화첩', 장승업의 '팔준도'는 그 자체로 이름값을 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전시는 유명 작가를 늘어놓는 방식으로 가지 않는다. 특정 화가나 특정 시대의 취향이 아니라, 조선 회화의 흐름 전체를 끊기지 않게 붙드는 일이 간송 수집의 핵심이었다는 점을 조용히 밀어 올린다.
특히 그림과 평론이 한 화면 안에서 만나는 '표현연화첩'은 작품 감상과 비평의 문화까지 함께 되살리며, 전시가 단순한 미감의 집합이 아니라 미술사의 복원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1층으로 내려가면 전시는 다시 결이 달라진다. 추사 김정희와 추사학파 관련 서화, 그리고 한국전쟁 뒤 흩어진 작품을 다시 찾아오는 재입수의 서사가 이어진다. 여기서 '문화보국'은 영웅 한 사람의 일화가 아니라, 한 번 지키고 끝나는 일이 아닌 문화유산 보존의 긴 시간으로 확장된다. 간송의 수집은 좋은 것을 모으는 취미가 아니라, 잃어버린 계보를 다시 잇는 집요한 작업이었다는 점이 더 선명해진다.
보화각 바깥의 석호상도 그냥 장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88년간 미술관 앞을 지켜온 청나라 석사자상이 중국으로 돌아가고, 그 자리를 조선 말기 석호상이 잇는 장면은 이 전시의 바깥 주석처럼 읽힌다. 지킨다는 일은 내 것만 움켜쥐는 일이 아니라, 타자의 유산 역시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윤리까지 포함한다는 뜻이다. '문화보국'이 낡은 민족주의의 구호로만 머물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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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보국'은 화려한 전시라기보다 단단한 전시다. 작품의 값어치를 자랑하기보다, 왜 그 값이 매겨졌고 누가 그것을 감당했는지를 끝내 묻는다. 그래서 관람객이 마지막에 가져가게 되는 것은 국보의 광채보다 더 무거운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부를 것인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가. 간송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그 질문을 작품이 아니라 역사로 답하고 있다. 전시는 6월14일까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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