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당이 흔든 시장 신뢰]③규제의 틈, 여전한 불씨
편집자주 삼천당제약 주가 급등락 논란의 이면에는 코스닥 상장 기술기업의 과욕과 시장 시스템의 허점이라는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제도 개선과 관련해 엄 변호사는 "현행 공시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확정 금액과 추정치를 구분 기재하도록 강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는 점"이라며 "기술이전 계약 공시에 표준서식을 도입해 계약금, 단계별 마일스톤, 로열티 추정 방식과 가정, 불확실성 고지를 구분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증권신고서에 적용되는 예측정보 기재 요건을 보도자료와 공정공시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위반 시 제재와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도 규율 가능하지만 까다로워
美 SEC처럼 정보 일관성·무관용 원칙 있어야
[삼천당이 흔든 시장 신뢰]①알맹이 없는 기술 청사진
[삼천당이 흔든 시장 신뢰]②투심 현혹하는 '홍보의 기술'
[삼천당이 흔든 시장 신뢰]③규제의 틈, 여전한 불씨
기술계약 등의 공시 과정에서 핵심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는 세부 내용은 사실상 감춰두고 대외 홍보 과정에서 이를 부풀리는 관행도 삼천당제약 사태로 조명받고 있다. 당장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공시는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수행하고,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임의적인 홍보 과정에서는 '어쩌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수준에 불과한 장밋빛 수치 등을 제시해 투자자들이 엄청난 호재로 인식토록 하는 행태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수호 법무법인 르네상스 변호사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삼천당제약이 계약 규모 등을 부풀려 발표한 행위를 두고 "규율할 법이 없는 게 아니라 적용이 까다로운 것"이라면서 "현행법으로도 제어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시장법 중 부정거래 조항은 투자자에게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중요사항을 누락한 채 재산상 이익을 취하려는 행위를 처벌한다"면서도 "다만 형사 처벌로 이어지려면 '이익 취득 목적'까지 입증해야 하는데, 기업이 추정치라는 점을 어딘가에 밝혀뒀다면 범죄 입증 및 처벌이 곤란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시장질서 교란' 규정을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변호사는 "자본시장법 제178조의2 제2항 제4호(시장질서 교란)는 목적을 묻지 않고 '오해를 유발할 우려'만으로 성립하며 이익의 1.5배 과징금도 부과할 수 있다"며 "확정도 아닌 금액을 헤드라인에 올려놓고 세부 설명은 계약상 비밀이라며 숨겨두는 구조라면 이 조항의 적용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는 결국 기업이 투자자나 대중을 향해 수행하는 공시와 자의적인 홍보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과제를 제시한다. 예컨대 그럴 듯한 숫자는 보도자료에, 변수가 되는 조건이나 불확실성의 단서들은 공시에 묻어두는 방식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계약 규모를 보도자료에 공개하는 순간 동일 내용을 공정공시로도 제출하게 하고, 확정금액과 추정금액을 반드시 구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면 이 문제의 상당 부분은 해결된다"며 "파트너사 이름이나 계약 조건을 영업비밀로 보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 숫자가 이미 확정된 것인지 10년 뒤를 가정한 추정치인지 정도는 비밀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엄태섭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도 삼천당제약의 홍보 방식이 자본시장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확정되지 않은 로열티 및 예상 매출 추정치를 확정 계약 규모와 구분 없이 합산 발표했는데, 이게 추정임을 명시하지 않고 근거도 공개하지 않았다면 '오해 유발 기재누락'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엄 변호사는 이어 "다만 특정 기업이나 사례에 대한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보도자료 발표 전후 임원·대주주의 주식 처분이나 자금조달 여부, 추정치의 근거와 가정이 실제로 어떻게 제시됐는지 등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도 개선과 관련해 엄 변호사는 "현행 공시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확정 금액과 추정치를 구분 기재하도록 강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는 점"이라며 "기술이전 계약 공시에 표준서식을 도입해 계약금, 단계별 마일스톤, 로열티 추정 방식과 가정, 불확실성 고지를 구분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증권신고서에 적용되는 예측정보 기재 요건을 보도자료와 공정공시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위반 시 제재와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 변호사는 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경우 수시 공시(Form 8-K)에 선급금·마일스톤·로열티를 구분 기재하도록 하는 별도 규정은 없으나 연간·분기 등 정기 보고서(10-K 등)에서 총 마일스톤 합계와 로열티율 범위를 공시하도록 요구한 실무 사례들이 있다"며 "국내 공시규정에도 이에 준하는 수준의 가이드라인 도입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일 학계와 임상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을 위한 TF'를 전격 발족하며 본격적인 제도 손질에 나섰다. TF는 올 상반기 중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완성해 증권신고서 내 추정치 근거를 구체화하고, 특히 언론 보도자료와 정식 공시 내용 간의 정합성을 철저히 확보해 투자자 혼선을 원천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美 SEC, 주관·해석 걷어내고 객관적 사실만
시장 안팎에선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SEC 수준의 무관용 원칙과 촘촘한 규제 체계를 이참에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의 엄격한 과학적 심사와 SEC의 철저한 금융 규제가 빈틈없이 맞물려 작동하는 시장이다. 미국 연방 증권법과 SEC 규제의 핵심은 경영진의 주관적 해석을 철저히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만을 강제하는 데 있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공정공시 규정'의 엄격한 적용이다. SEC는 기업 정보가 유통되는 '통로'를 가리지 않고 엄격한 일관성을 요구한다. 공정공시 규정에 따라 상장사는 공식 전자공시뿐만 아니라 보도자료, 기업 홈페이지, 심지어 소셜미디어(SNS)와 경영진의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모든 채널에서 완벽한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보도자료에는 '임상 성공'이라 홍보하고 정작 공시 서류에는 '통계적 유의성 미달'을 적어두는 식의 이중 플레이는 미국 자본시장에서 즉각적인 SEC 조사 대상이자 '시장 기만행위'로 간주된다.
미래 수익 전망에 대한 규제도 확실하다. 미국 사적증권소송개혁법(PSLRA)에 따른 '면책 조항'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면책 문구가 아닌, 해당 파이프라인의 구체적인 리스크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세히 열거해야만 한다. 전체 데이터 세트 분석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유리한 중간 데이터만 발표했다가 추후 부정적 결과가 도출될 경우, 이를 즉각적으로 보고해야 할 의무도 자동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규정을 위반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도 한국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이나 벌점 수준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SEC의 징벌적 과징금은 물론, 경영진에 대한 형사 기소와 임원 자격 박탈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본 주주들이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요구하는 증권 집단소송에 직면하게 되며, 이는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강력한 사후 통제 장치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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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 방울로 질병을 진단한다며 투자자를 기만한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는 SEC에 의해 10년간 상장사 임원 자격이 박탈됐고, 결국 증권 사기 혐의로 11년 이상의 실형과 함께 약 6000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간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던 인터셉트 파마슈티컬스는 부작용 위험을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주 집단소송에 휘말려 약 730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했다. 에이벨레 테라퓨틱스 역시 임상 데이터 일부가 조작된 사실을 인지하고도 보고를 지연했다가 FDA의 강력한 비난 성명과 함께 이사회의 감시 의무 태만에 대한 엄격한 법적 책임을 감수해야 했다.
박정연 기자 j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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