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차가움과 따뜻함, 묘하게 공존하는 '뼈의 기록'
얼마 전 우연히 30대 젊은 장례지도사를 인터뷰하는 유튜브 방송을 봤다. 그는 누구보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에 선입견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가 식당에서 '감사합니다'라고 의례적으로 인사를 하지만, 장례를 3일 동안 치르고 나서 유족들에게 받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는 그 무게감이 다르다." 장례지도사는 죽음이라는 차가운 단어와 진심이라는 따뜻한 단어를 통하게 하는 묘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연극 '뼈의 기록'은 장의사 안드로이드 '로비스'가 주인공이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의 극이다.
로비스는 영안실 침대에 누운 망자를 보며 늘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 생전의 모습으로 가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염을 시작한다.
극은 인류의 행성 이주 프로젝트 완료를 앞둔 2085년의 어느 날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지구는 자원을 고갈시킨 인류 때문에 황폐해진 상태다. 대부분 인류는 생존을 위해 이미 다른 행성으로 떠났고, 마지막 인류를 태운 우주선이 출발을 앞두고 있다. 인류가 지구에 안녕을 고하면서 로비스도 폐기, 즉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극은 이내 행성 이주 프로젝트가 시작된 2053년으로 배경이 바뀐다. 로비스는 매일 죽은 자들을 염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많은 유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로비스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인간에게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장례식장 청소부 '모미'가 로비스의 유일한 친구다. 로비스는 어린 시절 화재 사고로 말을 잃은 모미와 수어로 대화한다. 인간이 가진 감정의 의미를 묻고 조금씩 깨닫는다.
반복적인 로비스와 모미의 삶처럼 잔잔하게 흐르던 극은 모미의 죽음을 계기로 일대 전환을 맞는다. 로비스는 오랜시간 대화를 나눈 모미가 영안실 침대에 누운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모미가 화장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해 모미의 시신을 끌고 처음으로 영안실을 탈출한다. 로비스는 우주선을 쏘아올리듯 모미를 지구 바깥으로 내보낸다.
로비스가 영안실을 탈출하는 장면은 조명을 활용해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모미가 누워있는 침대가 무대 뒤편, 어둠 속으로 조금씩 사라지는 장면은 죽음과 소멸의 의미를 묻는 듯 묘한 여운을 남긴다.
뼈의 기록은 '천 개의 파랑'으로 널리 알려진 SF소설 작가 천선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24년 국립극단에서 '천 개의 파랑'을 연극화했던 장한새 연출이 다시 한번 연출을 맡았다. 최근 인공지능(AI)이 일상화되면서 로봇과 AI를 서사의 중심에 두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 뼈의 기록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묻는 작품이다.
장한새 연출은 "우리는 이미 로봇과 함께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로봇이 등장하는 연극이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AI가 고도화하면서 영화 '허'에서처럼 인간이 AI로부터 위로를 받는 시대가 현실화하고 있다. 뼈의 기록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 로비스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차가운 존재가 됐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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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새 연출은 관객들에게 차가운 세상의 감각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따뜻한 로봇이 필요할 정도로 차가운 세상이 됐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소설 원작과 달리 2085년이라는 세계가 더해졌는데 인간들은 또다시 자연을 역행해서 다른 곳으로 떠난다라는 설정을 추가해 관객들이 차가운 세상의 감각을 느꼈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는 "AI와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생기는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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