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유지계약 체결하고 전달 이력 남겨야
손해액 산정기준 현실화·자료제출명령권 강화
지식재산처 특사경 등 수사인력 확충해야
'중소기업 기술탈취 신문고' 원스톱 지원 제공

생존을 위해 대기업과 협업해야만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기술자료 제공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사업 협력'이나 '투자 검토' 명목으로 대기업에 제공한 기술자료들이 기술탈취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실무 현장에서 다수의 대기업 기술유출 사건과 중소기업 기술탈취 사건을 직접 대리해온 김동섭 법무법인 YK 변호사에게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기술탈취에 대비할 수 있는 방안과 관련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물었다.

김동섭 법무법인 YK 변호사.

김동섭 법무법인 YK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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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김 변호사는 2008년 변리사 자격을 획득했다. 특허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2017년 제6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뒤 IT와 지식재산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국내 및 해외 특허 출원을 대리했고, 특허청 연구개발(R&D) 선행기술조사 사업을 수행했다. 그 밖에도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평가위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블록체인 포럼 위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대기업과 협업해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내부 기술자료를 요청하거나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할 때 거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기술탈취를 막을 수 있는 대응 방안은.

▲사후 대응보다 예방이 훨씬 중요하다. 향후 분쟁을 대비해 '기술임치' 제도나 '영업비밀 원본증명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핵심 기술은 가급적 대기업과 접촉하기 전 특허 출원을 마쳐 권리를 선점해야 한다. 본격적인 협업 논의 시에는 구체적인 목적과 반환 조건이 명시된 비밀유지계약(NDA)을 반드시 체결하고, 대기업에 제공하는 자료는 최소화하되 기밀 표시와 전달 이력을 철저히 남겨야 한다. 또한, 평소 전자연구노트 등을 통해 독자적인 기술 개발 히스토리를 명확히 증빙해 두는 한편, 정부에서 지원하는 맞춤형 기술보호 컨설팅이나 보안설비 구축 사업을 활용해 중소기업 스스로 철저한 기술유출 예방 역량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 가능성이 엿보이거나 실제 기술탈취를 당했을 때 피해 중소기업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침해 가능성이 엿보이는 초기 단계에서는 가장 먼저 내부 시스템 접속 기록, 이메일, 메신저 등 관련 증거를 훼손 없이 신속히 확보해야 한다. 그 후 대기업 측에 권리 침해 중단을 요구하는 공식적인 경고장이나 내용증명을 발송해 추후 법적 분쟁 시 상대방의 악의적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행정적 구제 수단으로는 범부처 합동 창구인 '중소기업 기술탈취 신문고'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이곳에 신고하면 전문가 2인으로부터 상시 상담을 받고, 사안의 성격에 따라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지식재산처, 경찰청 등 적절한 소관 부처로 배정돼 조사와 수사가 진행되며 피해 구제 사업 연계까지 원스톱으로 지원받게 된다.

만약 이미 기술탈취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해 확산되고 있다면, 행정적 조치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신속하게 수사기관에 형사 고소를 진행해 불법행위에 대한 엄중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발생한 피해액을 실질적으로 보전받기 위한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소송을 제기해 강력한 사법적 대응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대기업과 계속 협업해야 할 처지에 있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지식재산처에 신고하거나 소송을 걸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대기업과의 관계 유지가 필요하다면 전면전보다는 전략적이고 우회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크게 세 가지 대안이 있다.

첫째, 외부 법률 대리인을 완충 지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마찰 없이 대리인을 통해 정제된 법적 요구를 전달해 대기업 내부의 자체 시정과 합의를 유도할 수 있다.

둘째, 익명 제보와 정부의 직권조사 제도를 방패로 삼는 것이다. 보복 위험이 없는 익명 제보 시스템이나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의 직권조사를 통해 간접적인 해결을 꾀할 수 있다.

셋째, 소송 대신 비공개로 진행되는 '중소기업 기술분쟁조정'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평판 리스크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양측이 수용 가능한 타협점을 신속하게 찾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출구이다.


김동섭 법무법인 YK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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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수사나 재판에서 대기업의 기술탈취가 인정되기 어려운 이유는.

▲가장 큰 원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압도적인 정보 불균형과 자금력 격차에 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장벽이 존재한다.

첫째, 증거 확보의 한계다. 기술유출을 입증할 핵심 증거가 모두 대기업 내부에 꼭꼭 숨겨져 있기 때문에 권한이 없는 중소기업이 이를 찾아내 입증하기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다.

둘째, 법원의 엄격한 영업비밀 인정 요건이다.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법원이 요구하는 철저한 수준의 보안 관리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워 재판에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소송 장기화와 솜방망이 배상액이다. 대기업은 막대한 자본력으로 재판을 수년간 끌며 중소기업을 지치게 만든다. 어렵게 승소하더라도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배상액이 적어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 기술탈취 사건을 대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또 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어떤 것들인가.

▲현장에서 가장 뼈아프게 느껴지는 부분은 피해자인 중소기업이 직접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강제할 수단이 부족해 큰 무력감을 느낀다.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세 가지의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

첫째, 한국형 증거 개시 제도(디스커버리)의 안착이다. 전문가가 침해 혐의 기업을 직접 조사하는 사실조사 제도와 법원의 강력한 자료제출명령권이 조속히 현장에 도입돼야 한다.

둘째, 손해액 산정 기준의 현실화다. 중소기업이 영업이익 감소분을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기술 개발에 투입된 비용 전체를 기본적인 손해액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셋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적극적인 적용이다. 법률상 배상 한도가 최대 5배까지 상향된 만큼, 일선 법원에서도 최고 한도의 배상액을 적극적으로 인용해 기술탈취에 대한 확실한 일벌백계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최근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범정부 대응단'이 꾸려지고 '중소기업 기술탈취 신문고'도 개설됐다. 이 같은 정부 대응이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나.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막기 위해 도입이 필요한 시스템이나 제도가 있다면.

▲그동안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상담과 신고 창구가 신문고로 일원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접근성이 향상되고 초기 대응의 혼란이 크게 해소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다만, 접수 창구의 일원화를 넘어 각 부처 간의 실질적인 수사 공조와 정보 공유가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심층적인 시스템 정착이 필요하다.

앞으로 추가로 안착돼야 할 시스템으로는, 중소기업이 입증하기 어려운 손해액의 객관적인 산정을 전담해 돕는 '중소기업 기술손해 산정센터'의 기능 확대가 필수적이다. 또한 소송 판례와 기술거래 정보 등을 모아 제공하는 데이터 통합 플랫폼인 '기술보호 울타리'가 더욱 고도화돼야 한다.

예방 차원에서는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화된 영업비밀 분류 및 유출 이상 징후 탐지 시스템을 정부 지원 사업으로 보급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김동섭 법무법인 YK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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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기술탈취를 규제할 수 있는 관련 법률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현행법 중 법개정을 통해 보완돼야 할 부분은.

▲대기업의 기술탈취를 규제하는 관련 법률로는 하도급법, 중소기업기술보호법,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특허법 등이 촘촘하게 마련돼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보완해야 할 점은 행정조사와 실무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시정권고에 불과한 조치를 강제성 있는 시정명령으로 격상하고, 중대 위법행위 시에는 강력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행정조사 거부나 방해 시 부과되는 과태료 역시 5000만원 이하로 상향해 조사의 강제력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법률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고도화되는 기술유출 범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처 특별사법 기술경찰과 같은 전문 수사 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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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기술유출을 막는 일은 단순히 특정 기업 간의 분쟁을 넘어, 우리 경제의 혁신 역량과 미래 성장 동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국가적 사안이다. 정부가 패스트트랙 운영이나 기술경찰 확충 등을 통해 수사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시장 내 무임승차와 기술탈취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공정과 신뢰에 기반한 경제환경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최석진 로앤비즈 스페셜리스트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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