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한달
조세형평성·정부 재정부담 등
시장 왜곡 우려 현실로
LNG 가격 급등은 숨겨진 뇌관
제2의 한전채 사태 발생할 수도
시장 기능 회복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에서 중동 사태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한 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경유 가격 안내문이 놓여 있다. 2026.4.2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에서 중동 사태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한 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경유 가격 안내문이 놓여 있다. 2026.4.2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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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8일 발발한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2주간 휴전에 들어갔으나 중동의 에너지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여전하다. 기대를 모았던 협상은 결렬됐고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봉쇄 조치를 내렸다. 국제유가는 다시 급등하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우리나라 에너지 구조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공급의 93%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1차 에너지의 80%를 화석연료가 차지한다. 또 원유의 70%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전쟁 당사국인 미국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중동 전쟁 이후 휘발유, 경유 등 석유 제품의 가격이 치솟자 정부는 30년 전에 사라진 석유 최고가격제부터 꺼내 들었다. 지난 13일부터 시작해 벌써 한 달째다.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우려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단기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고 소비자 부담을 완화할 수 있지만 정유사의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보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조세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인한 정유사의 손실 보상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에 4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이 자금을 화물차주나 농민 등 실제로 고유가로 피해를 보는 계층의 직접 지원에 사용했다면 더 두툼한 지원책이 나왔을 것이다. "왜 매일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고급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기름값까지 부담해야 하나"라는 볼멘소리도 당연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유사들이 석유 최고가격제를 환영한 것도 아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정유사의 실제 손실 폭이 정부가 추산한 것보다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주유소-정유사 사회적대화 상생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9 김현민 기자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주유소-정유사 사회적대화 상생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9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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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최고가격제에도 불구하고 석유 소비는 외려 증가했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이후인 3월 셋째 주부터 4월 첫째 주까지 휘발유 판매량은 84만8619㎘로 지난해 같은 기간 84만6511㎘에 비해 0.25% 증가했다. 가격이 상승할 것을 대비해 소비자들이 미리 사두려는 가수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석유 소비가 줄지 않자 정부는 공공 부문에 대해 차량 5부제에 이어 2부제(홀짝제)를 시행하고 있다. 민간에도 적극적인 동참을 권했다. 대기업과 각종 협·단체들이 호응에 나섰으나 전시 행정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불필요한 차량 운행을 최소화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주로 석유 제품이 문제였다면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숨겨진 뇌관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중동산 LNG 수입 비중은 약 15%로 이번 전쟁으로 인해 직접적인 수급난을 겪지 않았다. 전쟁 이후 아시아 시장에서 LNG 가격은 2배 이상 폭등했으나 LNG는 장기 고정 가격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당장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한다면 LNG 가격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5~6월쯤부터 국내 LNG 가격도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들어오는 LNG 중 절반은 발전용으로 사용된다. 발전 연료 중 가장 비싼 LNG 가격은 전기요금의 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LNG 가격이 상승하면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미 정부는 전기요금 동결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전기요금은 웬만하면 지금 변경하지 않고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6.3.26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6.3.26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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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전기요금 인상을 억눌렀을 때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지 잘 알고 있다. 한국전력은 당시 급등한 발전 원가를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서 2021~2022년 47조8000억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한전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고금리로 한전채를 대량 발행했다. 시중 자금이 한전채로 몰리며 채권 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많은 전문가는 이번 전쟁이 끝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감이 지속되면서 당분간 유가는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이 파국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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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에너지 가격을 통제할 수만은 없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국민 여러분께서 전기 사용이나 이런 점에서 좀 절감할 수 있도록 각별히 협조해달라"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시장 기능을 회복하는 것만큼 강력한 에너지 절감 정책은 없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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